주일학교에 말 안 듣는 학생이 있어 불러놓고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러니 나의 종아리를 쳐라”고 했다. 몇 대 때리더니 잘못했다고 울며 용서를 빌었고 나는 그 아이를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다. 또 자식처럼 사랑했던 청년들이 목사님께 종아리를 맞아야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라며 회초리를 들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회초리에 얽힌 사연은 ‘복음으로 낳았다’라는 바울의 말을 실감나게 했다.
중고등부 성회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잘못에 충격을 받은 학생들이 “나 같은 놈은 맞아 죽어야 합니다”라며 설교 도중에 강단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 뒤를 이어 수천명의 학생들이 회심의 종아리 맞기 위해 줄을 서는 기이한 이변이 벌어진다. 예배에 방해된다고 만류하지만 끝까지 버티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고, 그 때부터 나는 회초리 든 목사로 알려지게 됐다. 그 이후로 이 기이한 행렬은 청년, 장년 성회로 이어졌고, 직분자 세미나에서는 장로, 권사님들까지 종아리를 걷어 붙였다. 이제는 목회자들까지 매 맞기 위해 강단으로 올라오니 나로서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매를 맞아서라도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보겠다는 절박한 심정과 돌아온 탕자의 목을 끌어안는 아비의 심정이 교차하는 이 아름다운 회개의 행렬은 항상 하나님을 감동시켰고 성회는 풍성한 은혜로 넘쳐났다.
앞으로도 이 아름다운 회개의 행렬은 계속 되어져야 한다. 부모와 스승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지금은 가정과 학교에서조차 회초리를 든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답게 전달하지 못하고 죄를 과감히 도려낼 수 있는 날카로움을 잃어버려 회개의 충격을 줄 수 없다면 말씀의 절대적 권위는 사라지고 교회는 더 이상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랑의 매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 말씀을 전달하는 목회자의 삶이 성도들에게 회초리 같은 날카로운 메시지가 되지 못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주의 심정이 사라진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회심의 회초리를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실 것이다. 주여, 하나님 말씀을 ‘말씀’으로 전할 수 있는 말씀의 회초리를 든 사랑의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6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