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인 나는 나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생각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야만 하는 아버지의 뜻과 그 앞에서 죽음으로 순종해야만 하는 아들의 번민과 고통의 절정 속에서 예수님은 무릎을 꿇으셨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절규의 기도를 하셨다. 밀려오는 고독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서 절대 피할 수 없는 사명을 기도로 극복해 보겠다는 결심, 그 일을 감당해 보겠다는 비장의 각오의 기도를 한 것이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잠들어 있었고, 자신의 아버지조차 침묵하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은 기도로 순종의 절정의 순간을 통과하신 것이다.
교회 개척 후 21년의 세월 동안 인간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요구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감당할 수 없으나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주님의 요구를 들어줄 순종자가 되리라고 결심하고 믿음으로 행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다. 21년을 돌아보면서 나는 또다시 겟세마네 동산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하나님 앞에서 또다시 순종의 절정의 자리에 항상 서 있고 싶은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0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