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열려 있는 곳간과 같이 퍼주기만 하는 사랑이다. 바울이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 2:8)고 말한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사모한다는 것이다. 목사가 성도를 사모하고, 성도가 목사를 사모하고, 성도가 성도를 사모하여 서로 만날 때마다 기쁨이 가득한 것도 바로 그 사랑 때문이다. 바울은 자기 목숨이라는 수레에 하나님의 사랑을 싣고,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의 목숨보다 크게 여기고, 그 사랑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기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아들을 내놓으셨고, 아들도 사랑 때문에 죽으셨으며, 제자들도 그 사랑 때문에 순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는 예수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죄인된 인간을 위해 대신 고통당하고 죽으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들의 고통과 죽음보다 인류의 죄가 해결되고 구원받는 모습을 미리 바라보셨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나 역시 한 영혼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하나님 사랑의 수레가 되길 소원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12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