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인이 예수 앞에 끌려왔다. 율법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 율법대로라면 당장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예수께서 율법대로 죽이라고 하면 ‘살인하지 말라’는 또 다른 율법을 범하게 된다. 진퇴양난이다. 한 여인의 삶과 죽음이 예수의 입술에 달려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고 말씀하셨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돌을 들었던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돌을 버리고 하나 둘씩 그 자리를 떠나갔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에 끌어오는 것까지가 율법이 하는 일이며 한계이다. 그 율법의 정죄에서 나를 구원하여 자유함을 주시는 분은 예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으로 죄를 발견하고, 그 죄를 가지고 예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율법과 복음의 조화이다. 율법 안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지만 복음 안에서는 죄사함의 기쁨과 자유,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한 감사로 산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하신 말씀처럼 예수만이 율법의 완성자이시다. 우리는 그 예수를 믿기에 영원히 행복한 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7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