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8-23 11:29:18 ]
내 육체에게 밥과 물이 필요하고 옷이 필요하듯, 내 영혼에게는 예수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필요하다. 육체가 편한 것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내 영혼의 요구다.
주님은 내 영혼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시려고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죄에서,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길 소원하는 내 영혼에게는 최고 기쁜 소식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에 주린 자에게는 회개보다 더 급한 것이 없다.
회개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십자가의 가치도 모른다. 주님의 죽으심이 자신의 죄와 충돌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회개의 값을 알고, 은혜의 값을 알고, 인류 구원을 위해서 내놓은 주님의 목숨 값을 안다.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최고 지름길이다.
그러기에 기독교가 회개를 강조하고 촉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에 강하게 붙들리라는 것이다. 오늘날 사랑이 어떤 잘못이라도 그냥 덮어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사랑한다면 죄를 덮어줄 수 없다. 처지가 아무리 곤란해도 죄를 끄집어내서 분리해야 한다.
회개는 죄를 분리하는 것이다. 죄를 끄집어내서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멸망과 불신앙으로 망하지 않도록 살려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기독교의 사랑을 박애주의로, 윤리나 도덕, 인정이나 애정, 감정 따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사랑은 체면치레로 하는 사랑이 아니기에 적당히 할 수 없다.
하나님도 죄를 적당히 처리할 수 없으시기에 아들을 죽이는 방법을 선택하셨다. 만일 죄를 적당히 처리할 수 있다면 예수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조금도 적당히 처리할 수 없는 것이 죄다. 죄를 모두 분리해서 죽어 가는 자를 살려 내는 것이 기독교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