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4-06 09:27:33 ]
십자가는 최악의 저주를 상징하는 형틀이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자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저주하고, 저주받은 자를 입에 올리는 사람도 잡아서 저주했다.
그러기에 죽었다가 살아난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 그리고 문둥병자.소경.벙어리.귀머거리. 중풍병자였다가 고침받아 멀쩡해진 수많은 사람, 귀신에게 붙들렸다가 놓임받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 등 하나같이 예수를 자신 있게 변호할 만한 놀라운 체험을 한 자들조차도 감히 말 한마디 못했다.
그 시대에 십자가의 저주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다가 신성 모독죄로 저주받은 자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가 죽은 후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사람은 죄와 저주에서 인류를 속량하시고 구원하신 구세주로 예수를 기억한다. 예수의 탄생부터 공생애, 고난과 죽음까지 함께하신 성령께서 죄 없으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또 마가 다락방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를 전하게 하심으로 ‘저주의 십자가’에서 예수가 구세주임을 증거하는 ‘구원의 십자가’로 바꾸셨다. 이 얼마나 극과 극을 오가는 대반전(大反轉)인가? 만일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예수를 인류 역사 속에 저주받은 자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예수 믿는 자들을 십자가의 증인으로 사용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저주의 십자가가 구원의 십자가로 바뀌는 극과 극의 체험을 하게 하신다. 이 일이 곧 복음전도요, 그리스도인이 목숨 걸고 수행해야 할 사명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3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