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8-30 19:31:52 ]
회개는 자기 혼자 소리치고 우는 것이 아니다. 죄 때문에 물론 울어야 하겠지만, 그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신 죽음도 함께 붙들면서 그분이 날 위해 죽으신 심정을 같이하여 울어야 한다.
내가 망하는 것 때문에 우는 것뿐 아니라, 망하게 된 내 모습을 해결하고자 하나님 아들의 죽으심을 끌어안고 울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죄를 짓고는 혼자 울며 자책한다. 자책으로 회개를 끝낸 사람은 돌아서서 그 죄를 또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해결하려고 예수께서 피 흘리신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고 십자가 앞에 자기 죄를 쏟아놓는 사람은 다시는 그 죄를 범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 은혜를 무시하고, 남용하여 방종할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고 하였다.
얼마든지 회개하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 피 공로를 부정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죽으신 일이다. 그렇다면 어찌 하나님 아들의 죽으심을 육체의 범죄를 해결하는 장난거리로 생각할 수 있으며, 육체의 정욕을 불사르고 나서 그 죄를 쏟아버리는 쓰레기통 정도로 볼 수 있겠는가?
천국은 회개한 증거로 성령이 충만한 자가 주님께서 부르실 때 가는 곳이다.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를 부르신다.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은 찾은 죄를 자백하라는 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