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6-19 11:27:08 ]
‘영생(永生)’이라는 단어가 지닌 실제 가치만큼 영생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왜냐하면 먼저 목회자가 그 가치를 알고 성도에게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신앙생활의 한계를 분명히 깨닫게 해주어 그들 스스로 훨씬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영적 생활을 선택하도록 영생에 관한 확신을 분명히 심어주고 소유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전국 경제인 연합회에서 설교 요청이 왔다. 그래서 우리 교인 중에 경제 분야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을 모아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설교 원고를 준비했다. 그런데 경제인들 앞에 막상 서보니 경제에는 그들이 전문가라 경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해 간 원고는 접어두고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부자의 비유를 본문으로 하여 죽음 이후의 삶에 관해 설교했다.
“여러분이 만일 죽는다면 돈을 가지고 가시렵니까? 명예를 가지고 가시렵니까? 죽으면 끝입니다. 우리는 목숨이 있을 때 죽음 후의 나를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가 없는 세상일은 당신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소모일 뿐입니다. 육신을 값지게 소모하려면 영원히 사는 영혼을 위해 소모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인상을 찌푸리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다. 목사는 성도에게 영생의 꿈, 즉 영혼의 때를 위해서 사는 것이 값진 삶이요,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광 중에 살 최고 복이라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하늘의 꿈이 아닌 이 세상의 허황한 꿈만을 심어주는 설교가 너무 많다.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것이 복이 아니다. 최고의 복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이다. 성도로 하여금 영생의 꿈, 영생의 소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목사가 할 일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