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8-12 13:41:48 ]
어릴 적 우리 동네에 술주정뱅이가 있었다. 인사불성으로 술을 마시고 진흙탕에 빠지는 날이 허다했다. 그럴 때면 동네 사람들은 “또 빠졌네!” 하고 혀를 차며 안타까워만 할 뿐, 누구도 그 진흙탕에 들어가서 꺼내 주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술주정뱅이의 집에 가서 그의 아내에게 “당신 남편이 또 진흙탕에 빠졌구려” 하고 일러 주기만 할 뿐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술주정뱅이의 아내는 한걸음에 자기 남편이 있는 진흙탕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기 온몸이 진흙으로 범벅 되든 말든 상관 않고 남편을 집으로 데려갔다.
그 아내의 마음속에는 자기가 진흙탕에 빠지든 말든 남편을 그 진흙 구덩이에서 꺼내서 데려올 사랑의 힘이 있었다. 누구를 사랑하면 그만큼 힘이 생긴다. 사랑은 이렇게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로 삼으시고 친히 우리의 신랑이 되셨다. 사랑은 어떤 격(格)도 무너뜨리며 어떤 조건도 뛰어넘는다. 주님과 우리를 두고 볼 때,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라 서로 격이 맞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주님은 자기의 몸을 찢어 그 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의 신부로 삼아 주셨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아까운 것이 없는 사이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사랑하기에 둘이 있으면 부러울 것이 없다. 내가 주님의 신부라면 신랑 되신 주님만 있으면 된다. 마지막 때에 주님은 신랑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신부를 데리러 오신다.
사랑은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속에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그래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는 신랑의 일이라면 모든 것, 곧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놓을 만큼 신랑을 사랑한다.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주님 앞에 섰을 때 반갑게 만날 수 없다. 사랑해야 신부로서 신랑이신 주님을 기쁘게 만날 수 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영광스럽게 최고의 기쁨으로 만나기를 원한다면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윤석전 목사
위 글은 교회신문 <39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