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5-08 09:21:22 ]
어릴 적에 채소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머니가 일거리를 남겨 둔 채 벌떡 일어서서 집으로 달려가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하루는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엄마, 조금만 더 일하면 되는데 왜 벌써 일어나세요?” “으응, 지금 빨리 집에 가야 해. 네 동생 젖 달라고 울어” 하시면서 어머니는 연신 두 손으로 젖가슴을 비비시면서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셨다. 몇십 분이면 일을 마치는데도 젖이 불어 오니 배고파 울 자식 걱정에 일을 멈추고 일어나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속이 주려서 울어 대는 자식을 절대 못 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도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를 잊지 않으신다. 아니 잊을 수 없다. 영적으로 주리고 목마른 인류의 사정을 주님께서 인간 자신보다 잘 아시기에 그 갈급함을 보시고 채워 주신다. 퉁퉁 불은 어머니의 젖이 배고파 우는 주린 자식 몫이듯, 주님은 자기 영혼이 주리고 목마른 것을 아는 자의 몫이다.
‘때까치’가 있다. 사람이 둥지에서 새끼를 끄집어내면 어미 때까치는 사람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울어 댄다. 새끼를 되돌려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울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구슬프고 애처롭다. 다시 새끼를 가져다가 풀숲에 놓아 주면 어미가 헐레벌떡 날아와서 우는 모습은 마치 새끼를 품고 몸부림을 치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마귀에게 속아 죄짓고 그 죗값으로 저주받고 멸망하고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품 안에 있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고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하나뿐인 아들을 죽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마5:6)라고 하신 말씀은 괜히 하신 말씀이 아니다. 받지 못해 주리고 목마른 우리보다 더 주지 못해 주리고 목마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