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8-19 12:35:54 ]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러 신임하는 세 제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러고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26:38) 당부하시고 한적한 곳에 나아가 땅에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예수께서 왜 이렇게 하셔야 했습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언제 예수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우리 죄를 대신 갚아 주세요’라고 애원했습니까? 우리 대신 죽어 달라고 청원서라도 올렸나요? ‘나 지옥 가기 싫으니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서 나를 살려 주세요’라고 하나님에게 소리라도 질렀습니까? 하나님께서 죄로 죽을 인간의 사정을 우리보다 먼저 아시고 그 멸망을 친히 해결하시고자 자기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
세상 어느 아버지가 자식 죽는 것이 소원이겠습니까? 어느 아버지가 자기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죽기를 원하겠습니까? 아들의 원(願)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기 아들을 희생 제물 삼아 죽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원하는 바가 아들을 통해 이루어졌기에 지금 우리가 죄에서 저주에서 영원한 지옥 고통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아들이 죽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약속대로 죄 사함받은 거룩한 심령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아들이 죽어 주었기에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아들 예수가 죽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