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10-31 12:01:31 ]
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복은 문화 안에 속한 물질문명을 움켜쥐고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돈이 있어야 복이요, 물질문명의 지배자가 되어야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기준을 문화에 놓고 복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복의 근원이시고,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시는 예수님은 우주 안에서 천지간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는 것이 복이라 말씀하지 않으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기 영혼을 위하여 애통하는 자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셨다.
주님이 주시려는 것을 복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주님이 주시려는 복을 복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복을 사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육안으로 보이지 않고, 경제성이 없고, 육체가 누릴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복은 우리가 문화 속에서 사는 동안 육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세상 사람들은 복으로 알지 않는다.
만약 우리 육신 속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안다면, 너도나도 빼앗아 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복은 그렇게 빼앗을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 또 이 복은 심령 안에 가지고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영원히 누릴 수 있다. 이 기쁨을 맛보고 가진 사람이 진정 복 있는 자다.
또 복 받은 사람은 의(義)에 주린 것을 느끼는 영적 감각이 살아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 중에 이것을 못 느끼는 사람이 많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을 금식하셨을 때 주린 창자로 육체가 고통스러웠지만 돌덩이를 떡으로 만드는 데 자기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정욕을 채우려고 자기 능력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창자를 채우려고 자기 능력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괴롭고 힘들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자기 능력을 사용하셨다.
위 글은 교회신문 <64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