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3-10 09:44:50 ]
하나님께는 우리 인간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갈망(渴望)이 있다. 하나님이 죄로 지옥 가는 인간의 멸망을 바라보고 얼마나 구원해 주고 싶으셨으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지라도 우리를 살리겠다는 뜻을 세우셨겠는가. 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묵묵히 모진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셨겠는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가 인간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갈증의 분량을 알고, 그 분량만큼 받고 싶어 갈망해야 한다. 그 갈증의 상사점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다.
죄 아래 살다 지옥 가는 사람을 건져 주고 싶은 것은 예수 믿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처럼 전도를 열망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자기 영혼이 만족하고 기뻐하는 성도가 교회에 가득하다면, 그 교회는 빠르게 부흥할 것이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성도들이 전도에 갈증을 느껴야 한다. 죄로 멸망할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끄집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셨듯이, 주님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셨듯이, 우리도 목숨을 다하고 소유를 다해서라도 예수 몰라 죄로 멸망하는 수많은 이웃을 살리려는 구령의 열정에 갈증을 느껴야 한다.
스데반이 얼마나 전도에 갈증을 느꼈으면 돌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했겠는가. 우리도 주님께 신령한 영적인 복을 받고 싶어 갈증을 느끼고, 내가 가진 예수를 나누어 주고 싶어서 갈증을 체험해야 한다.
이런 갈증을 맛본 사람은 전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 먹으라고 말할 필요가 없듯이 기독교인에게는 전도하라, 충성하라고 말할 것이 없다. 자기 본능이 충성에 주리고, 순종에 주리고, 믿음에 주리고, 말씀에 주리고, 전도에 주리고, 의에 주린다. 갈급한 자기 심령을 스스로 채우기 위해, 자기의 주리고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기 때문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