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1-25 14:33:04 ]
2010년을 맞아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연설을 통해 ‘변화’를 강조하였다. 세계경제 위기가 새로운 질서를 재촉하고 있다고 규정하며, “우리는 큰 변화의 물결 한가운데에 있다. 지금 세계는 구질서가 해체되고 신질서가 등장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낡은 사고방식으로는 새로운 물결을 헤쳐 나갈 수 없다”고 지적하며, “신질서에서 주도하는 나라”가 되자고 했다. 지금의 구태의연한 사회, 경제 구조를 벗어나자는 것이다.
신뢰 깊은 사회로
『야성적 충동』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로버트 실러 교수(예일대 경제학)는 그리스의 과다한 국가 부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 같은 대규모 부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길은 오직 ‘금융혁신’뿐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20분간의 신년사에서 ‘변화’라는 단어를 13차례나 사용한 것도, 실러 교수의 ‘금융혁신’도 구조화된 문제들을 벗어나야 신뢰가 회복되고 소비와 투자가 살아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제적인 신뢰 회복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오랜 부패가 구조화되어 있다. 납세자들은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조차 불안한데 어떻게 투자가 증대되겠는가. 대통령이 말한 ‘신질서’란 새로운 구조, 즉 부정부패를 벗어난 신뢰의 구조, 청렴의 구조를 뜻한다.
이런 시점에 이 대통령은 ‘2010년을 국격(國格) 제고(提高)의 원년으로 삼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G20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국가의 품격과 위상을 높이는 데 주력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은 직속기관으로 국가 브랜드 위원회를 만들었고 공익광고, 공모전, 전시 홍보 등을 통한 국격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KOREA’라는 브랜드가 품격 있는 이미지로 통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모두가 바람직한 행사이지만, 국가의 품격이란 기업 차원의 이미지 홍보와는 격이 다르며, 대통령의 ‘실용’ 외교정책 또한 단기적 이익 추구의 방안은 될 수 있어도 국격 상승 방안은 아니다. 국가의 품격이란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이야기이다. 재외공관의 ‘미니 박물관화’는 한국의 브랜드 상승을 위한 좋은 투자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신, 문화, 예술로 축적된 자존심, 국민통합의 정도, 부정과 부패, 관용과 인권상황 등이 다 포함되어야 국가의 품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경제적, 군사적 힘보다 인의(仁義)로 세계의 모범이 되는 문화 도덕국가가 되자고 했던 것도 국가의 품격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국가의 품격을 높일 것인가. 얼마 전, TV토론회에서 ‘청렴’이 국가의 품격을 높여준다는 연설을 듣고 동감했다. 우리나라는 부패가 구조화되어 그 구조에 속한 우리는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법건설의 하도급 비리, 의약품 리베이트, 수출입 물류 리베이트가 다 이런 구조화된 부패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뇌물로 이루어지는 계약 구조에서는 시일 지난 상품이 버젓이 납품되고 국제적 성분기준에 못 미치는 의약품이 거래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납세자의 돈이 청렴하게 사용될 수 없다.
청렴도가 높아지면 투자가 늘고, 무역이 확대되고, 인적자본도 확충된다. 이것이 성장동력이 되어 안정을 가져오고 브랜드 향상이 이루어진다. 국가의 품격은 자연히 상승하게 된다.
청렴하신 예수의 정신 본받아야
청렴이란 정직 그리고 깨끗함이다. 이 땅에서 청렴의 가장 좋은 예는 단연 예수라고 생각했다. 누추한 곳에서 태어나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거하셨지만, 영은 높고 맑았고, 주님이 가진 모든 것, 살도 피도 주었으니 참으로 욕심이 없으셨다. 사랑 그 자체였다.
우리네 인생이란 끊임없는 선택이다. 개인도, 기업도, 정부도 부패의 구조 아래에서는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는 악한 영의 구조 안에 있으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 경고등이 수차례 켜졌지만, 비이성적으로 과열하는 인간은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 불로 돌진하는 불나방처럼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이제 세계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많은 나라가, 많은 회사가, 많은 개인이 앞이 보이지 않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제 숨을 고르고 멈추어 생각해야 한다. 누가 우리를 탐욕의 동물로 변질시키고 버블로 몰아가는가. 위험을 달콤한 환상으로 착각하며 돌진하는 성급한 마음은 누가 주는 것인가. ‘신질서에서 주도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 우리나라가 신속히 구조화된 부패에서 벗어나길 기도한다.
청렴도가 상승하여 경제위기에 빠질 확률이 제로가 되어 안정을 누리고 국가의 품격이 상승하길 소망한다. 청렴하신 예수의 정신을 본받아 인격도 높아지길 소망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17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