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족’과 하나님의 ‘복’ 혼동해서는 안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 당당하게 살아가야
나는 세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아이들이 어우르고, 겨루고, 용케도 흩어지면 어느 새 하루가 총총 사라졌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무언가’ 되묻기도 했고 당차게 새로운 도전장도 던지며 자신과의 겨루기를 계속했었다. 세상에 보여지는 ‘나’ 말고 나는 무언가. 무엇이 나의 주체인지 모르고는 어디에 사나 이방인으로 여겨질 것 같았다.
어떤 주류를 택할 것인가
까뮈의 소설 <이방인>을 보면, 삶은 부조리하여 ‘햇빛’ 때문에 살인을 하기도 하고, 사랑 없이 결혼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한들 그건 큰 의미가 없다고 주인공 뫼르소는 고백한다. 이 책은 현대인의 부조리를 잘 드러내었다고 평가되었고, 까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제 나는 하나님을 알게 되어, 하나님 안에서 많은 기쁨을 누리며 감사하며 살고 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은 까뮈의 분석처럼 세상 무엇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단절감으로,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단절감으로 많이 힘들겠구나 생각한다.
어릴 적에는 왜 공부를 하여야 하는지, 부모님이 왜 의사, 변호사, 교수가 되라고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의 친정아버지는 함경도 북청에서 1.4 후퇴 때 월남하셨고 북청 물장수로 고생하셨다. 형제, 부모와 갑작스레 헤어져 낯선 곳에서 물동이 지며 견디었던 아버지의 고독과 불안을 생각하곤 한다.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을 하고 어렵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리셨을 때, 실향민들은 우리 집을 참 부러워하였다.
당시 실향민들은 이 땅에서 자리를 잡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동해안 속초 땅에 모여 살았다. 물론 실향민 중 자수성가하여 주류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도 여럿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한 땅의 주류가 될 수 없었고, 삶의 변두리를 배회하다가 고향에 가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친정아버지는 두 해 전, 힘겨운 일생을 마치고 암병동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셨다. 그분들은 불행했는가. 주류가 아니어서?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가 있다. 1970년대 당시의 미국 이민자들은 언어와 신분 문제로 야채가게, 세탁소 등을 운영하며 자녀들이 시민권자로 미국 주류 사회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하루하루 힘든 삶을 버텼다. 그 친구는 비참하고 초라하게 살아가는 한인 이민자들을 ‘엽전’이라 비하하며 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성공하여 미국 유명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 친구는 행복한 것일까. 주류사회에서 성공했으니까?
나 또한 아이들을 양육하며 그 아이들이 주류 사회에 큰 인물이 되기를 소망했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주류 사회의 가치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 눈에는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이전 생각의 패러다임을 해체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정욕을 버리게 해달라는 기도와, 표현을 다양하게 했으나 요약하면 정욕을 채워줄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함께 드렸다. 교만을 버리게 해달라는 기도와 마음의 중심이 교만한 기도를 계속했다. 하나님 영광 안에 거하게 해달라는 기도와 세상 평안을 간구하는 기도를 함께 드렸다. 한 발은 하나님 나라에 한 발은 이 세상에 담그고 때론 이곳이 이방이며, 때론 저곳이 이방이 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처럼
주류란 세상의 다수가 바람직하다고 추구하는 큰 흐름, 대세를 뜻한다. 그런데 다수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허탄한 계획인 경우가 많고, 다수는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으뜸이 되어 하나님 기업을 확장하는 일은 참 귀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 안에 온전히 거하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에게 어차피 이 세상은 이방일 뿐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할 뿐이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 내가 나를 부인하지 못하고 나를 인정하려 할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벽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이 세상에서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을 의지하고 인정하려고 할 때, 하나님 나라의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주님만 함께하신다면 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이방인으로 떠도는 어려움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으나, 하나님 나라의 이방인이 되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가.
돌아보면, ‘주님 우선’(God First)이라고 하면서 잠시 머무는 이 땅의 영광을 우선시하였고, 세상에서 큰 인물이 되어 하나님의 큰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그 모두가 사단의 속임수임을 알게 되었다. 어리석게 속지 않는 길은 오직 기도, 오직 성령 충만이다. 하나님 나라의 이방인이 되어선 안 되며 당당한 시민권자로서 성령으로 온전히 인도받는 충실한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18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