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5-03 13:10:06 ]
어뢰 피격설, 좌초설 등 물증은 없고 심증만 남아
영구 미제사건이 되지 않도록 신속한 조치 필요
천안함 사태가 한 고개를 넘었다. 각고 끝에 두 동강난 함수와 함미를 인양하고 희생 장병 46인에 대한 영결식도 마쳤다. 기본적인 사태수습을 마쳤으니 이제 여론의 관심은 한 가지, 침몰 원인이다. 원인에 따라 대응책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침몰 원인을 두고는 갖가지 억측과 추측들이 일반에 난무하고 있다. 북한 도발설이 가장 유력한 가운데 좌초설이 이에 맞서고 있고 심지어 미군 오폭설, 혹은 속초함 오폭설, 미 핵잠수함 충돌설까지 확인할 수 없고 근거가 희박한 설들이 떠돌고 있다. 백령도 근해의 수심이 얕은 해역에는 미 핵잠수함이 다닐 수 없는데도 말이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갈려 있다. 선박 설계 전문가, 선박 건조 전문가, 폭파 전문가, 음향 분석 전문가, 군사 전문가, 인양 전문가 등등 전문가 집단에서도 어뢰피격설, 좌초설 등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마치 “너는 어떤 설을 믿느냐”는 식으로 믿음의 영역으로 넘어간 듯한 분위기다.
현재 가장 유력한 추론은 북한 도발설이다. 절단면의 모양으로 볼 때, 그리고 천안함 선수 부분과 소나돔(Sonar Dome, 음파탐지기 덮개)이 온전하다는 점, 북한이 지난해 대청해전 이후 지속적으로 보복을 다짐해왔다는 점, 두 차례 연평해전을 비롯해 과거 사례에서 보았듯이 북한은 보복을 다짐하면 꼭, 반드시 행동에 옮겼다는 점, 해상전투에서 절대 열세를 절감한 북한이 비대칭 전력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관측, 3대 세습 등 중대 전환기에 북한은 시기와 강도(强度)를 정교하게 조절해 예기치 못한 도발을 감행해왔다는 점 등등이 근거다. 또 북한 소식을 전하는 각종 대북 매체들도 북한 내부 정보원을 인용해 북한 연루설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와 군은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 내린 듯하다. 김성찬 해군참모 총장이 영결식에서 “국민에게 큰 고통을 준 세력들이 그 누구든지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찾아내어 더 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면서 북한을 염두에 두고 보복을 다짐한 점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북한 어뢰 피격설에는 허점이 있다. 가장 약점은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어뢰 파편조차 없으니 어뢰 종류도 확실하게 제시할 수 없다. 중국제 어뢰라는 등 추정만 있을 뿐이다. 또 어뢰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북한이라 하더라도 무엇 때문에 6자 회담 등을 앞두고 이런 악수를 두었겠느냐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좌초설은 초기에 유력하게 제기되었다가 지진파가 공개된 이후 가능성에서 밀렸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좌초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해군의 최초 보고 시 좌초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최초 침몰 위치가 백령도 해안가에 더 근접했지만 해군이 이를 숨겼다는 주장 등이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좌초설 역시 허점이 많다. 침몰 지점이 암초 지대가 아니라는 점, 물 밖으로 나온 함수가 예상 외로 온전한 상태였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좌초설의 드러나지 않은 가장 유력한 근거는 정부와 군에 대한 불신이다.
결국 어느 설도 심증일 뿐 물증이 없이 정황적 증거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난제다. 정부와 군은 북한에 혐의를 두고 있지만 물증이 없으니 공개적으로 북한을 거론할 수 없는 처지이다. 과거 냉전시절 같으면 물증이 부족해도 북한 소행으로 단정하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섣불리 나설 경우 되레 북한으로부터 역공을 당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만 좁힐 수 있다.
침몰 원인을 두고 여론이 갈리게 된 데는 군의 책임이 가장 크다. 침몰 초기 군은 보고도 초기 대응도 모두 허둥댔고 서툴렀다. 침몰 시각을 밤 9시 45분이라고 했다가 1주일 사이에 네 차례나 수정한 끝에 9시 22분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 시간도 해경보고의 9시 15분과 다르다는 의혹을 샀다. 또 없다던 열상감시장비(TOD) 영상을 여론에 밀려 추가공개하면서 군이 무언가 큰 것을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자초했다. 또 함미를 침몰 지점에서 옮기는 장면이 방송사 카메라에 포착되는 등 군은 여러 장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불신을 더 키웠다.
기강해이와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를 극명하게 보여준 군과 정부가 이를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는 길은 물증을 찾아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응징하는 것이지만 이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조류가 세고 물이 탁한 서해 넓은 바다에서 어뢰 파편 조각을 찾는 일이 간단치 않을 뿐 아니라 자칫 몇 년이 걸릴 수 있으며 그러다 보면 천안함 침몰 사건은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또 북한 연루설을 확증할 수 있는 물증을 찾는다 해도 부담이 덜어지는 게 아니다. 실제로 이미 강력한 국제적 제재를 받는 북한에 대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위험을 감수하고 실효성 있는 보복을 감행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미국이나 중국이 한국의 대북 보복조치에 내심으로 얼마나 동의해 줄지도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원인을 밝히고 반드시 응징해야한다는 당위와는 달리 천안함 사건이 무수한 설만 남긴 채 영구 미제사건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걱정이 벌써부터 고개를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