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대한민국을 살려 주세요”

등록날짜 [ 2010-06-21 23:12:31 ]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으로 일어섰기에
민족을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로 매달려야

이어령 씨가 쓴 수필집 <흙속에 저 바람 속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뜻하지 않은 조난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아주 짤막한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영어권 사람들은 “Help me”를, 일본인은 “다스케테쿠레”를 외친다. 한국 사람은 “사람  살려”라고 한다. 그것을 잘 분석해 보면 각 민족의   특성이 있다.

“사람 살려”와 “도와주세요”의 차이
“헬프 미” 나 “다스케테쿠레”는 다 같이 도와달라는 뜻이다. 다만 영어는 “나를 도와달라”지만 일본어는 그냥 “도와달라”고만 되어 있다. 사경에서  헤매면서도 ‘나’를 내세우는 서구인들의 개인의식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어쨌든 “헬프 미”나 “다스케테쿠레”라는 말은 “살려 달라”는 말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힘을 좀 보태 달라”는 것이다. ‘제로(0)상태’에서 구원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힘을 보조해 달라는 의미가 잠재해 있다. 죽음 속에서도 주체적인 힘을 잃지 않으려는 흔적이 보인다. 그러므로 “도와 달라”는 것과 “살려 달라”는 것은 다 같은 구원의 요청이라 할지라도 그 뜻과 태도가 많이 다르다.

누군가 살려주지 않으면 안 될 나라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위급한 경우에 그냥 “살려 달라”고 한다. 그것은 완전한 자포자기를 의미한다. “나에겐 아무런 힘이 없다”, “죽어가고 있다”란 뜻이다. 100퍼센트의 구원을 바라는 어투이다. 나무에 비료를 주는 것과 같은, 늙은이에게 지팡이를 주는 것과 같은 그런 도움이 아니라 시체나 다를 바 없이 쓰러져버린 사람을 업어가는 일이다. 전적으로 자기 운명을, 자기 목숨을, 자기 몸을 타인에게 내맡기려는 행위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이러한 “사람 살려” 식의 상황에 너무나 익숙해 있다. “사흘 굶으면 양식 지고 오는 놈이 있다”는 속담만 해도 그런 것이다. 이쪽은 앉아서 그냥 굶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양식을 짊어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저자가 이 글을 쓸 때가 6.25전쟁 후였는데 실제로 그 당시 미국은 한국의 원조에 대해서 “밑 빠진 독에 물을 퍼붓는 것”이요, 이것은 경제 원조가 아니라 ‘먹여 살리는 행위’라고 했다고 한다. “살려 달라”는 이 한마디에 담긴 의미가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국가적 상황에 저자는 참으로 안타까웠을 것이다. 동족 간에 저지른 처절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라, 국가적인 자존심을 다 내어놓고 “살려 달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힘없는 나라, 불과 60여 년 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복음과 “살려 달라”가 만났을 때
그런 대한민국이 2010년 지금 어떻게 바뀌어 있는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가 되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에서 언급한 “살려 달라”고 하는 민족성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너무나 의존적인 민족성이 기독교의 복음과 제대로 결합되면서 놀라운 신앙의 힘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약소국인 나라, 일본 침략으로 36년간이나 나라를 빼앗겼다가 또다시 설상가상 전쟁으로 온통 잿더미가 된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었겠는가? 그런 우리 민족에게 복음은 의지할 수 있는 절대 희망이고 유일한 위로와 낙이었으리라. 이 땅에 소망이 없었기에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하였을 것이고, “살려 달라”에 너무나 익숙한 민족이기에 죽기 살기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가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강한 영성을 만들 수 있는 영적 토양은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발전과 함께 복음이 들어온 지 약 120년 만에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가장 왕성한 국가라는 두 가지의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열악한 환경과 “살려 달라”고 밖에 할 줄 모르는 연약한 민족성이 오히려 강점이 되어 하나님을 일하시게 한 것이다.

하나님으로만 살 수 있는 민족
약할 때 강함 주신다는 말씀처럼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요청하고, 내가 이만큼 했으니 그 남은 부분을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으니 “살려 달라”고 100% 하나님께 기도했으니 이보다 더 높은 영적 본능을 가진 민족이 또 있을까?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기도로 하나님만 의지한 우리 민족에게 영혼 구원이라는 영적 축복과 함께 경제적 부유의 축복도 함께 허락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으로 일어선 민족이기에 죽으나 사나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려받은 소중한 믿음의 유산을 잘 지켜 후세에 전달해 주는 것이 이 민족이 살 길이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지금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이념적 갈등, 세대 간의 갈등을 겪고 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믿음의 선배들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대한민국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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