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8-02 22:42:35 ]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달라
창조질서 어긋나는 ‘행위’ 언제든 규탄해야
동성애 문제가 계속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는 TV 드라마를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게 됨으로써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이제 한국교회에서도 방관할 수만은 없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동성애’라는 말 자체가 약 20년 전에는 방송에서 다루기가 무척이나 껄끄러운 용어였으나 약 10년 전부터는 사회적 약자로서 동정론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더 나아가 커밍아웃을 대단한 용기로까지 우대하고 있다.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난 행위
동성애는 고대에서부터 존재해 온 사회의 한 현상으로, 사실 규제한다고 해서 아주 없어질 현상은 아니다.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성경의 내용은 본성이 타락한 고대 인류와 동성애가 만연한 그리스 사회문화 환경 속에서 기독교인들에게 경계의 의미를 분명히 제시하였다.
성경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동성애를 공식적으로 용인할 수가 없다. 그것은 아름답다고 미화될 수도 없고, 동경 되어서도 안 된다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벗어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성에 대한 성적 욕구나 취향도 사회적으로 모두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성범죄로 처벌되듯이, 동성 간의 성적 취향이나 욕구도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인 접근법이 아니다.
창조질서 파괴는 막아야
동성애를 지지하고 찬성하면 진취적이고 용기있는 사람이 되며, 이를 반대하면 보수적이고 닫힌 사람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소수자 인권이나 권익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의 ‘비정상성’을 지적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비겁하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남자와 여자가 합일체를 이루는 것을 결혼이라고 하셨지, 동성적인 합일체를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것은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그 어떠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것보다도 더 강력한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미국의 젊은이들을 ‘무너진 세대’라고 부른다. 희망이 없는 세대라는 의미이다. 적어도 1960년대 전의 미국 젊은이들은 건전한 환경에서 양육되었고, 세계 최고 강대국의 상속자로서의 자부심과 꿈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 기간에 대법원에서, 공립학교에서의 성경교육 중지를 명령한 이후, 도덕기준을 상실한 젊은이들은 건전한 삶의 방향성 상실과 성적 자유와 마약 탐닉으로 인하여 오늘날 미국의 몰락을 경고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게 되었다는 판단이다.
결국, 성경을 중시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고리타분한 것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씀이 없이는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바른 가치를 제시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性)은 자체가 신성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이며, 창세기 1장에서 이성(異性) 간에 한 몸을 이루는 일을 결혼으로 정의하셨다. 부부가 되는 일은 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추상적·포괄적 의미를 넘어 성적 존재로 창조된 남녀가 성적 합일체를 이루는 것임을 분명히 일깨워 주셨다.
성경을 보면 언제나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을 때마다 성적 타락이 난무했음을 알 수 있다. 노아의 홍수 때 그러했으며,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때에도 동성애가 난무했다. 하나님께서 법으로 제정하신 인간 창조의 원리를 감히 내어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가정의 기본은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다. 그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고, 하나님이 설계하신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 국가가 문명을 이어가고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인구 증가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보다 많은 이들이 구원받기를 바라신다. 가정을 이뤄 자녀를 생산하게 하신 것은 세상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구원받는 숫자가 늘어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교회가 끝까지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구원의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라는 논의도 있지만,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 치료를 통해서 얼마든지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동성애를 나타내는 유전자는 없다고 한다. 오히려 강한 중독성 때문에 선천적이라는 오해와 주장을 낳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성적 소수자에 대하여 무조건 경원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치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동성애를 보편화하고, 이를 용인하는 사회는 분명 건강치 못한 사회이다. 상업방송의 지나친 상업성이 사회 공익을 해치는 것을 심히 염려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0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