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부활, 그 아름다운 소망을 바라보며

등록날짜 [ 2011-04-20 10:02:05 ]

씨앗이 자라나 다른 형태로 변하듯
영원한 생명 가질 그날을 기대하며

예수께서는 부활을 밭에 뿌린 씨에 비유하셨다. 식물의 씨앗은 오랫동안 휴지(休止) 상태로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높은 열이나 엄동설한에도 죽은 것 같으나 땅에 제자리만 잡으면 부활하듯 소생하여 싹을 내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한 씨앗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이스라엘에서 2005년도에 발견한 2000년 묶은 종려나무 씨앗이다. 이 씨앗은 서기 73년에 로마군과 싸우다가 죽은 유대인들이 머물던 마사다 요새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 씨앗 중 하나를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약 8주 만에 30㎝ 길이에 잎이 7개나 달린 싹이 자랐다고 하니 그 생명력이 경이롭다. 또 뿌린 씨앗은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땅에 심기면 전혀 다른 형체로 변한다. 이런 특성은 죽은 자가 육신은 흙에 묻히지만 신령한 몸으로 새롭게 변하는 것과 상통한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이 하신 말씀 그대로 한 알의 씨앗처럼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인으로 정죄받고 저주의 형틀인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어쩌면 천지창조보다 더 큰 초유(初有)의 사건이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일어난 성경 속의 징조들을 살펴보면 전혀 그런 엄청난 사건처럼 보이지 않는다.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 약 3시간 동안 어둠을 동반한 지진이 일어나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고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부활하신 후에도 예수의 시신을 두었던 무덤의 돌이 옮겨진 것과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이 전부일 정도로 그 징조가 미미하다. 역사적으로도 이스라엘 변두리 마을에서 일어난 해프닝 정도의 가치밖에 되지 않는다. 인류 구원을 이룬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부활할 때 일어난 징조치고는 몹시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예수의 부활로 나타나는 생명력을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셨을 것이다. 오직 믿음의 눈, 영적인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부활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은 아담 이후 인류의 죄가 일순간에 해결되어 하나님과 막힌 담이 무너진 사건이요,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마귀의 불법을 드러냄으로써 사망의 권세를 파괴하고 영적 전쟁의 승리를 선포한 사건이다. 그 결과, 인간은 죄와 저주와 질병에서 자유를 얻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지옥문이 닫히고 천국의 문, 영생의 문이 열렸다. 이 세상 누구도, 천지 만물이 힘을 합쳐도 할 수 없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의 부활로 영원히 망하게 된 마귀는 자신이 지옥의 무저갱에 빠지는 형벌의 날까지 그 사실을 감추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의 부활을 부인하거나 왜곡해야 한다. 그 중 마귀가 성공을 거둔 방법이 예수를 사대성인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 부활을 실제 사건이 아닌 추상적인 사건으로 축소하여 생명력 없는 죽은 씨와 같이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은 예수의 부활로 주신 생명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부활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던 자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세월 속에 사는 동시에 영혼의 때에 영원한 세월 속에 살려 해야 하고, 육신을 입고 있으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를 소망하며 예수를 위해 날마다 내가 죽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가장 거룩하고 정결한 주님의 신부로서 그분 앞에 서는 그날까지…

위 글은 교회신문 <23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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