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예리한 칼, 안전한 칼집

등록날짜 [ 2010-09-14 07:18:35 ]

칼 잘 쓰기 위해서는 칼집의 용도도 중요
참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만들어 나가야

칼은 검(劍)과 도(刀),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양날이 있는 칼을 ‘검’이라 하고 외날을 ‘도’라고 한다. 양날 검은 찌르는 것이 목적인 서양 칼이고, 외날인 ‘도’는 동양에서 쓰는 칼로 찌르기보다는 베고 가르는 데 사용한다. 성경에서 칼(sword)은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말로 ‘검’이라는 말과 혼용되어 쓰인다. 에베소서에서는 영적 전쟁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공격용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 했고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이라 하면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했다.

잘못 쓰인 말씀의 검
말씀의 검의 위력이 이처럼 대단하기에 용도에 맞게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그 칼은 나를 위해 써야 한다. 번제단에서 희생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듯이 말씀의 검으로 내 속의 죄를 끄집어 내놓고 찔러 쪼개버리고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또 말씀의 검은 악한 마귀와 싸우기 위한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 말씀의 검은 나를 향하고 적을 향해야 한다. 그 칼날이 다른 곳을 향하면 그때부터 그 칼은 흉기가 된다.

말씀의 검을 잘못 사용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은 말씀의 검을 적을 향해 겨누지 않았고 자신들에게도 겨누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칼날을 휘둘러 자신들 외에 모든 사람을 율법으로 정죄하였다. 그것으로 모자라 황당하게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에게 그 칼을 들이대었고 그 결과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아군을 찌르는 칼, 비판과 정죄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의 검이 바리새인처럼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일에 쓰면 영혼을 죽이는 무기가 된다. 하나님 말씀을 몰랐을 때에는 판단이나 비판의 기준이 도덕적, 윤리적 기준 혹은 내 양심의 수준에서 끝나지만, 말씀을 알게 된 후에는 그 기준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한마디로 인간의 양심이라는 무딘 칼이 아닌 말씀이라는 아주 날카로운 검을 손에 쥔 것이다. 그러니 그 칼을 엉뚱한 데 쓰면 그 위력만큼 피해도 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칼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한 번쯤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이런 경험들을 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내 주위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몇 번 권면하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그때부터 안타까움은 불만으로, 또다시 그 불만은 비판과 정죄로 바뀌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형편이나 믿음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믿음의 연륜이 있는 성도에게나 해야 할 신앙을 권유하게 되고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칼과 칼집
왜 그럴까? 당연히 칼을 쓰는 사람의 문제다. 덧붙인다면 ‘칼’은 가졌지만 그 칼을 보호할 ‘칼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그렇다. ‘칼’이 재능이나 열정을 의미한다면 ‘칼집’은 그것을 제대로 쓰기 위한 성품을 말한다. 칼집이 시원찮으면 칼은 항상 위험하다. 특히 실력이나 재능이 월등히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 재능을 뒷받침할 만한 성품을 갖추지 못하면 늘 문제가 생긴다. 최근 나라의 일꾼을 뽑기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허무하게 낙마하는 후보자들을 보면 더 실감이 난다.

모세도 그런 부류였다. 그는 40년간 이집트 왕자로서 왕자수업에서 배운 실력도 있었고, 민족 해방을 위한 열정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그를 쓰지 않았다. 그 실력과 열정을 뒷받침할 만한 튼튼하고 안전한 칼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40년간 혹독한 광야생활을 거치게 하시면서 그 과정을 통해 칼집을 완성하신 후에야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셨다.

명검(名劍)일수록 칼집이 좋아야 한다. 따라서 세상의 어떤 검보다 뛰어난 말씀의 검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더 그 말씀을 더 빛나게 해 줄 인격과 성품의 칼집을 갖추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이에게 복된 소식이 담긴 아름다운 멜로디와 향기나는 편지가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다듬어져야 하는 것이다.

『칼과 칼집』의 저자 한홍 목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칼집은 겸손이다. 내가 가진 것이 진리라면 더욱 겸손이라는 바구니에 담겨 전달되어야 한다. 칼집은 인내이다. 그것은 무기력한 손 놓음이 아니라 나로서 최선의 준비를 마치고 하나님의 움직임을 기다리는 것이다. 칼집은 침묵이다. 한마디 말에 천근의 무게를 담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혹은 사람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침묵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칼집은 자기 절제다. 속도가 빠를수록 브레이크가 잘 듣는지 체크하는 통제 능력이 절실하다. 칼집은 부드러움이다. 대가일수록 움직임이 부드럽다. 춤추듯 부드러움 속에서 폭발력이 품어 나온다. 예리한 칼과 안정된 칼집을 겸비한 리더가 못내 그리운 때다.” 과연 나는 칼과 칼집을 잘 갖추고 있는가? 돌아볼 일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0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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