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

등록날짜 [ 2010-09-28 21:06:55 ]

드라마와 영화 키워드 ‘복수’
영화나 드라마는 시대 상황을 묘사하거나 사회 갈등을 잘 보여준다. 또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도덕 감정이 투영된 경우가 많다. 예컨대 7-80년대 동서냉전이 한창일 때 사람들이 좋아한 영화는 전쟁 영화가 많았고 언제나 심판받는 악당은 공산주의 집단이었다. 근육질 영웅 혼자 수천의 악당을 무찌르는 <람보>는 이 시대 정서를 잘 보여준다. 사회갈등이 많고 소외감이 심했던 8-90년대는 순정물이나 조폭영화가 히트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즐겨보는 영화나 드라마는 어떤가? 평론가들이 최근 영화나 드라마를 연구할 때 자주 주목하는 키워드가 ‘복수’다. 물론 복수를 주제로 삼은 영화나 드라마는 오래전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모든 장르가 복수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면, <올드보이> 같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나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 같은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드라마로는 <선덕여왕>, <아내의 유혹>, <아이리스> 같은 것이 인기를 끌었고 최근작 <자이언트>도 복수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소재나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드라마 기본 얼개는 대개 비슷하다. 착하고 평범한 주인공이 평화롭게 살다가 의도와 무관하게 어떤 음모에 말리면서 가혹한 시련을 겪는다. 액션영화 같은 경우 보통 믿었던 조직에 배신을 당한다. 큰 시련을 겪으면서 주인공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본인은 거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다시 돌아온 주인공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아주 강해져 치밀한 준비를 한 후 냉정하게 복수를 시작한다. 복수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을 괴롭히던 사람들이 파멸하고 정의가 실현되지만 뭔가 허전하다. 대충 이런 식이다.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처럼 주인공의 복수가 범인보다 잔인해도 관객이 싫어하지 않는 것은 상대가 악당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액션영화가 주로 복수를 모티브로 활용했지만 지금은 멜로나 성공드라마도 예외 없이 이런 갈등구도를 집어넣는다.

복수의 심리학
복수를 주제로 삼은 드라마나 영화가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反證)이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 보면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폭력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며, 정신 질환이나 스트레스 지수도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또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기강이 해이하고 불법이 많으며, 경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강간, 살인 등 강력범죄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생계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질투하는 증오형 범죄가 늘고 있다. 드라마가 일종의 대리만족을 충족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복수라는 테마가 강하게 어필하는 현상은 우리 시대 심리적 갈등과 불만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복수는 내가 부당하게 받은 고통을 그것을 가한 상대방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기에 일종의 권선징악을 실현하는 행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똑같이 상대에게 행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법의 발달과정을 봐도 처음에는 동해동복, 즉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법의 본질이었지만 점차 사법권이 독립하고, 인권개념이 생기면서 사사로운 형벌을 금하는 것이 보편적이 된다. 각자 복수를 행한다면 정의가 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혼란해지고 살 수 없게 된다. 또 복수는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정의심에서 발생하기보다는 내가 짓밟혔다는 자존심이나 남에게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욕망에서 비롯한다. 즉 내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존심이 복수의 원인이다. 그리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커지거나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낄 때 복수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진다. 오늘날 복수는 개인보다는 테러처럼 소수집단이 다중을 상대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더 많이 활용한다. 이 경우는 오히려 악을 일소하고 정의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면서 끔찍한 폭력을 은폐한다. 그리고 이런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더 확대하게 된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성경은 칼로 칼에 맞서지 말고 오히려 용서와 선한 행동을 통해 원수를 제압할 것을 권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12:20)는 말은 복수가 아니라 선의 힘을 가르친다. 내 눈에서 눈물을 쏟게 한 원수에게 똑같이 앙갚음하면 내가 똑같은 악인이 되고 또 다른 복수심을 불러온다. 하지만 악인을 불쌍히 여기고 선하게 대접하면 오히려 그가 부끄러워하고 숯불을 놓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려 잘못을 뉘우친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을 팔고 죽이려 했던 형들을 용서한 요셉처럼 말이다. 용서는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악순환을 멈추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지혜다. 마음에 복수심을 불태운다면 가장 괴로운 사람은 나 자신이고, 복수를 끝냈다고 그러한 불편한 감정이 없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복수는 최후 심판을 주관하는 그분의 것이다. 우리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복수의 마음을 불태우지 않도록 더 노력하자.

위 글은 교회신문 <2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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