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10-19 07:59:42 ]
뒤틀려 있는 방향을 예수로 바로 잡고 ‘자유’ 만끽하자
몇해 전, 싱가포르에 가서 세계 최대 규모의 주롱새공원을 본 적이 있다. 공원 전체가 새들로 가득한데도 그 공원 위에는 그물이 없다. 수만 마리 새가 그물이 없어도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새들이 살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놓아서 그런 것일까? 사실 믿기지 않지만 새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꼬리날개 깃털을 뽑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들은 위로 날 수는 있지만 방향을 잡아주는 꼬리날개 깃털이 없어서 멀리 못 가고 빙글빙글 돌다가 맥없이 떨어지고 만다. 겉으로 봐서는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도 제대로 날아보지 못한 채 거대한 새장에 갇혀 있는 것이다.
방향감각을 잃다
단도직입적으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주롱공원의 새처럼 꼬리날개 깃털이 잘린 신세라고 하면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화부터 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 사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너무나 흡사하다. 인생은 B로 시작해서 D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즉, Birth(탄생)에서 Death(죽음)로 끝난다. 그런데 B와 D사이에 C가 있는데 C는 Choice, 선택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을 위해서는 무엇인가 믿어야 한다. 결국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믿을 만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정보는 많은데 믿을 만한 것이 없다. 자꾸 변하기 때문이다. 절대 진리는 없고 수시로 바뀌니 속지 않으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계곡의 급류를 타는 래프팅처럼 방향을 종잡을 수 없기에 두려움 속에서 순간순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한계적 상황 속에 갇히다
치열한 고민 끝에 혹시 좋은 선택을 하고 그 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성공은 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결과는 불공평하다. 왜 그럴까? 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있다는 것은 가진 자원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자원은 제한적이고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것을 내가 더 빼앗는 방법밖에는 없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아야 성공자가 될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인간의 욕심은 커지고 점점 그 방법도 불법적이고 잔인무도해진다. 방향도 알 수 없고 적군과 아군조차 구분할 수 없는 아수라장 같은 한계 상황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사람들은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력(自力)으로 이 상황에서 탈출해 보려고 노력해왔다.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여기에 구원의 길이 있다, 행복과 희망이 있다고 날지 못하는 신세를 잊고 이렇게 외친다. “자 봐라, 이렇게 멋지게 날 수 있잖아. 당신도 나처럼 날 수 있어.” 그러나 이것은 추락이다. 추락하는 것이 비행(飛行)은 아니다. 지금까지 어떤 누구도 이 한계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제는 날아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인생, 뭐 별것 있어?” 하며 현실에 안주한다. 하지만 이것이 인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내면 깊은 곳에서 아무리 눌러도 터져 나오는 ‘이게 아닌데’라는 의문과 답답함으로 고통스럽지 않은가?
만약 이런 열정이 아직 꿈틀거리고 있다면 당신이야말로 정상적인 사람이다. 아무리 희망을 밟고 밟아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이요, 한계상황에서 어떻게든 헤쳐나가려 하는 자유를 향한 열망, 절대 진리라는 희망을 찾으려는 본능을 가져야 인간다운 인간이다. 이것을 우리는 ‘영성(靈性)’이라고 부른다. 이성, 지성 그리고 감성을 초월하거나 혹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하나님이 원래 주신 성품이 바로 ‘영성’이다.
잃어버린 영성을 찾다
인간이 이 영성을 잃고 사는 것은 주롱공원의 새들이 꼬리날개 깃털이 뽑혀서 날지 못하는 것처럼 배후조종자에 의해 영성이 절단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배후조종자가 사단, 마귀, 귀신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은 ‘영적 존재’로 창조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공급받아 이 땅의 모든 것들을 다스리며 영원히 사는 존재였다. 그런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사단의 유혹에 속아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단절되었고 생명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인간의 영적 기능도 제 기능을 상실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방향이 완전히 뒤틀려 빗나간 채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 아닌 공중권세를 지배하는 악한 영이 공급하는 자원으로 그 밑에서 평생 얽매여 종노릇하며 살아온 것이다.
추락이 아닌 비행을 경험하다
여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복음(福音)이다. 복음은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빛을, 제한된 자원 속에서 죽어가는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보내셔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이루셨다는 기쁜 소식이다.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그동안 잃었던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회복된다. 아니, 한 단계 더 상승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온전해진다. 여전히 배후조종자는 우리가 하나님께 방향을 돌리려는 것을 방해한다. 인간을 두고 벌어지는 이 치열한 방향 싸움이 영적 전쟁이다. 이 싸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하셨다. 이제 예수 안에 거하면 된다. 이제 한계적 상황은 끝났다. 당신의 비행은 시작되었다. 추락이 아닌 비행을 경험하라. 자유를 만끽하라.
위 글은 교회신문 <21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