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훌] 늘 마음을 새롭게 하며 변화를 시도하자

등록날짜 [ 2011-01-11 11:20:09 ]

인지 능력, 세월과 비례할 수 없어
늙어간다는 핑계로 도태하지 말자

사람들이 흔히 갖는 편견의 하나가 개인 발달에 관한 것이다. 보통 아동기와 청소년기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왕성한 성장이 이루어지지만, 성인기에 정점을 찍은 후에는 모든 것이 쇠퇴하기 시작하고 죽음을 향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은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위한 노력을 추구하지만 나이가 들면 삶의 안정과 정체성을 잘 보존해야 한다며 보수적 태도를 미덕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집착하고 좀처럼 남의 말이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완고함이 커진다. 마치 성인기 이후에는 현상유지만이 최선인 것처럼 행동하고 새로운 변화에 관심이 있는 것은 미숙한 태도인 것처럼 치부한다. 이런 생각은 변화와 발달을 지나치게 생물학적 관점에서 단계론적으로 바라보면서 성인기 이후에도 변화가 지속함을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실제로 최근 발달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발달은 젊은 나이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전 생애에 걸쳐 양상을 달리하면서 전개한다. 예컨대 지능을 보면 일반적 생각은 노인이 될수록 지능이 쇠퇴한다고 믿지만, 인구 5% 정도만 그런 일이 발생하며 인지능력은 책을 읽는 것 같은 정신 활동을 계속한다면 많이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20대 초반이 지적 발달이 가장 왕성하지만 그것은 기억력 같은 영역에서 두드러질 뿐, 이해력이나 종합하는 능력은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진다. 필자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이런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지적 순발력이나 정보 처리능력에서 나이 든 교수가 젊은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그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종합해서 적용하는 사고력의 깊이가 크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발달은 일률적으로 젊은 시기 성장과 노년기 퇴보로만 바라볼 수 없는 전체 삶의 변화를 뜻하며 증가와 감소가 함께 작용한다. 예를 들어 은퇴는 더는 일을 하지 못하는 퇴물이 되는 것 같지만, 더 많은 여가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하다. 언젠가 고등학교 교사를 은퇴한 분이 전공을 살려 고궁 안내원으로 자원봉사하면서 두 번째 인생을 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사랑도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물론 나이 든 부부가 젊은이들처럼 데이트하고 서로에 대한 육체적 정열을 불태우지는 않지만, 배우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다. 우리가 노년기를 비생산적인 시기로 보는 것은 대부분 발달을 생물학적 성장과 동일시하거나 아니면 발달이 다양한 영역에서 질을 달리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노력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다는 편견을 갖기 때문이다.

각각의 시기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역할이 있고 매 순간 목표를 위해 해야 할 노력이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었다고 스스로 변화 가능성을 막고 더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멈춘다면 그러한 생각이 삶의 퇴보를 가져온다.

새해가 되면 많은 결심을 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들해지면서 무기력하게 안주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성경은 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태도라고 강조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새해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좀 더 자신을 새롭게 바꾸려고 노력해보자.

위 글은 교회신문 <225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