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2-24 10:50:07 ]
사회 현상에 따라 바뀌는 미혹에 주의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부활 신앙 가져야
요즘은 스마트폰이 대세다. 국민 대다수가 휴대폰을 사용하다보니 그 기능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각종 업무는 물론, 교육과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두루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없는 기능을 찾는 것이 더 빠를 만큼 급속도록 발전해 가고 있다. 어디까지 그 기능이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최첨단을 달리는 최신 스마트폰도 곧 구닥다리가 될 순간이 올 것이다. 아니면 다시 휴대폰 고유 기능인 ‘통화(通話)’만 가능한 휴대폰이 유행할지도 모른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매년 짧은 치마, 긴 치마가 번갈아가며 유행하고, 통이 좁은 바지 넓은 바지, 줄무늬가 있는 셔츠 없는 셔츠, 단추가 세 개 달린 양복 두 개 달린 양복 등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마다 그 유행이 변한다.
방송매체에서 보이는 호감도에 따라 그것을 따라가려는 대중은 늘 그것에 민감하다. 그 속도는 점차 빠르게 변하고 있어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일반 대중은 그것을 쫓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방송은 늘 대중을 선도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 한다. 그래야 방송의 모든 경제활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유행은 돌고 돌아 결국 그 자리인데 사람만 늘 바쁘다. 유행을 모르는 사람은 바쁠 것도 없다. 유행이 알아서 그 자리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좋으나 싫으나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 크리스천도 이러한 유행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유행에 따라 살아가야할 필요성은 없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되 그 속에 매여서 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유행을 알되 그 유행을 쫓아가려 바동거리지 말고 유행을 다스리고 초월하여 신앙 안에서 잘 이용할 줄 알면 된다. 그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크리스천의 자세요, 지혜다.
한국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20여 년이 지나면서 신앙에도 많은 유행(?)이 있었다. 한 때는 ‘시한부 종말론’ 바람이 불더니, 어느 순간 ‘사회 구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또 어느 순간 ‘예언’과 관련한 여러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한 모든 것이 또한 한 때 유행처럼 지나갈 바람에 불과했는데도 많은 사람이 이를 분별하지 못하며 바람에 이끌려 이리 가고 저리 가다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빠지기도 했다.
신앙생활은 말씀 안에서 그 말씀으로 나의 신앙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끝까지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천국과 지옥은 이미 창세부터 있었던 것이고, 말세에 대해서도 이미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예언과 각종 신비로운 은사에 대해서도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고 이미 나타나고 있는 바다. 이를 마치 새로운 것인 양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야말로 한 때의 유행을 새로운 것인 것처럼 선전하는 방송매체와 같이 성도를 미혹하는 선도자(?)일 뿐이다.
누구 말씀이 이렇다더라 누가 이런 예언을 했다더라 등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물론 말씀에 민감해야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성경에 벗어난 말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신앙인의 마지막 자격인 신부의 믿음, 부활의 신앙을 위해 달려가는 연세중앙교회에 소속한 것을 큰 축복으로 알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유행은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한 때의 바람에 괜히 들떠있지 말고 지금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최선의 삶임을 잊지 말자.
위 글은 교회신문 <23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