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6-15 09:21:53 ]
지능만 발달하고 감성은 뒷전인 사회
서로 보듬고 살피는 배려 중시되어야
서울 명문대학 의대생들이 술에 취한 동기 여학생을 성폭행 후 나체 사진 촬영까지 한 혐의로 구속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장차 의사가 되어 환자를 치료하고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될 미래 엘리트들이 6년 동안 동문수학한 동기생을 파렴치하게 욕보이고도 강간하지는 않았다고 발뺌한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각종 성범죄와 인면수심의 극악한 범죄가 갈수록 확산하면서 최근에는 사회 상류층 인사들이 연루한 강력 범죄도 심심찮게 보도된다.
이번 의대생 사건은 우연히 벌어진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입시 위주 경쟁주의 교육과 도덕적 쇠퇴가 낳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증이다. 어려서부터 오직 공부만 잘해 남을 제치고 무조건 출세해야 한다는 관념에 길들어, 인성은 결핍한 채 머리만 발달한 아이들을 키운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젊은 층을 접하는 필자는 예전과 비교해 요즘 학생들은 공감(共感)능력이 떨어짐을 자주 느낀다. 수업 시간에 사회현안이나 도덕적 문제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사회 부조리나 약자들의 희생과 고통에 아무런 감흥을 보이지 않는 학생들을 자주 본다. 수업 시간이니까 담담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뿐, 진정한 공감이나 안타까움 없이 다른 나라 얘기하듯 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얘기가 소재로 등장해도 남의 일로 여길 뿐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지도자 자리에 오른다면 사회의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고 소외된 이들을 배려하고 보듬을 수 있을까 몹시 걱정된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타인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고 공감하는 중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것이 사회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베스트셀러 저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이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며 소통할 수 있는 존재라면서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리학자들도 인지연구를 통해 인간에게는 거울신경세포가 대뇌피질에 있어서 타인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의 것처럼 느낀다고 설명한다. 만약 타인이 눈물을 흘리면 그 슬픔이 전해지고, 기뻐하면 그것을 보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공감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특히 놀이와 교육을 통해 사회화 과정에서 더 풍부해진다. 우리가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고, 관계를 맺으며 문화를 축적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공감능력 덕분이다.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 살인범들은 어떤 이유인지 공감능력이 원천적으로 결핍해 있다. 일종의 정신적 장애인데 그러다 보니 아주 잔혹한 죄를 저지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물질 만능주의가 발달하고 도덕적 가치를 소홀히 하면서 아이들은 공감능력을 키울 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 사회가 지능만 발달하고 감성은 결여한 괴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성교육에 눈을 돌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게 아이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으며, 특히 교회가 공감의 모범을 보이고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해야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는 공감 능력이 남달리 탁월했다. 예수를 좇는 무리를 대할 때나 병자들을 치료할 때 ‘민망히 여기사’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원뜻을 보면 ‘마음이 비통하고 괴롭다’, ‘몹시 안타까워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공감’은 예수의 제자인 기독인들이 특히 가져야 할 최고 미덕 중 하나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