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3-13 16:46:59 ]
국가체제 유지 위해 국민을 이용하는 것 보며
우리도 지혜롭게 선거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
군인 한 명이 12세 아이를 꼼짝 못하게 밟고 있고, 다른 군인은 대검으로 아이의 멱을 따며 낄낄댄다. 멀리 어둠 속에서 아이의 부모는 오열을 삼키고 몸을 떨며 지켜볼 뿐 어찌 할 수가 없다. 군인은 반군과 내통했다며 끌고 간 민간인 36명을 가축을 도살하듯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해치웠다.
최근 시리아의 한 난민이 영국 BBC에 증언한 참상이다. 또 다른 마을에서는 정부군이 7개월 된 유아의 목을 베어 거리에 진열한 후 반군을 도우면 이런 처벌을 받을 거라고 주민을 협박했다고 한다.
아랍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자 시리아 정부군의 대응이 갈수록 야만적이 되어 간다. 유엔 인권 이사회가 작년 11월 공개한 보고서를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은 시위를 진압하며 살인, 고문, 강간, 성폭력 등 끔찍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어린아이까지 잔혹하게 고문해 죽인다고 한다. 살해한 어린아이가 벌써 400명을 넘어서고 곳곳에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이쯤 되면 질서회복을 위한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 거의 전쟁이고 말살이다. 하물며 전쟁 중에도 민간인과 포로에 대한 학대를 금하는데, 시리아 정부는 정권 유지를 위해 자국민을 대상으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만행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
또 다른 장면 하나. 최근 미국 의회에서 탈북자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증언한 탈북자 모녀의 끔찍한 체험담도 사람들을 몸서리치게 한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 보위부에 넘겨진 탈북자들은 쇠사슬에 묶여 얻어맞고 짐승처럼 취급당하며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강제노역에 시달린다고 한다.
먹는 것도 부실할 뿐 아니라 신발조차 없어 동상과 질병에 시달리다 이름 없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거기에 여성 탈북자들은 온갖 형태의 성폭력과 성고문에 시달려 고통이 배가된다. 탈북자들 실태는 그간 여러 차례 증언이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고발한 연극 <요덕 스토리> 같은 공연을 통해 익히 알려졌지만, 최근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 때문에 더 관심을 받았다. 앞으로도 이 문제는 계속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두 차례 세계 대전을 치르며 대량 학살을 겪자 인류는 인간이 지닌 양심과 이성에 근본적인 회의를 품고 반성하며 국제기구를 만들고 평화와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국가 간 전쟁의 위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전후 신생국가들의 재건이 잇따르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제 국가 권력에 의한 내부 폭력이 문제 되고 있다.
특히 민주화 경험과 인권의식이 취약하고 권위주의 전통이 강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유혈 사태나 내전에 따른 살육, 자국민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폭정이 잇따랐다.
최근 시리아나 북한 사태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중립적 기구가 아니라, 얼마든지 특정 세력을 위해 도구화하여 국민을 위협하고 적처럼 대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 국제사회가 분쟁 해결에 무기력하며, 평화와 인권을 내세우면서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부패한 정권의 후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해준다.
성경은 공의를 알지 못하는 통치자들은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는 자들이라고 비판하며 정의의 회복을 말한다(미가3장).
이런 폭정과 야만을 막는 것은 외부의 도움이 아니라 국민의 각성과 사회 정의의 실현뿐이다. 과연 우리 정치인과 통치자들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며 국민을 위해 일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사적 이익을 위해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지 잘 판단하여 지혜롭게 선거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