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6-19 11:26:45 ]
부모 경제력에 기대는 ‘캥거루족’ 최근 크게 늘어
자식이 스스로 독립하도록 가르침이 최상의 교육
오래전에 읽은 책 중에 오색딱다구리의 자식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오색딱다구리는 알을 낳으면 가슴 부위에 동그랗게 털이 빠져 있다. 혈관에 집중해 있는 가슴 털을 뽑아내서 더 따뜻한 체온으로 알을 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품은 알이 깨어나면 부부는 번갈아가며 먹이를 물어다 키운다.
오색딱다구리는 특히 새끼들이 성장하여 둥지를 떠나야 할 때, 그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이 정말 애틋하면서도 냉정하고 단호하다. 부모 새는 우선 먹이 주는 횟수를 줄인다. 주로 딱정벌레 애벌레를 잡아 15분 간격으로 둥지를 찾던 부모 새는 새끼들이 자라 이별의 시간이 가까울수록 먹이 주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점점 늦춘다.
또 산란 후 33일 동안 자신의 가슴 털을 뽑아 가면서까지 체온을 나누어주던 어미 새는 홀로서기를 가르치기 위해서 더 이상 새끼들에게 체온을 나누어주지 않는다. 같은 기간에 새끼들의 둥지에서 밤을 지키던 아빠 새도 이별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더는 둥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홀로 밤을 지새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이별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어미 새는 더욱 단호해진다. 먹이를 공급받는 횟수가 줄어 배가 고픈 새끼에게 어미는 먹이를 주려는 듯 가지에 앉았다가 먹이를 그냥 자신의 입에 문 채 멀리 날아가 버린다. 어미는 그렇게 스스로 날아가 먹이를 잡아야 한다는 점을 새끼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친다. 어미가 먹이를 주지 않고 날아가자 드디어 새끼 한 마리가 자신의 날개를 펴고 둥지를 떠난다. 그 뒤를 따라 다른 새끼들도 하나둘씩 부모의 곁을 떠나 자기들만의 세상으로 날아간다.
나무의 자식사랑도 유사(類似)하다. 모두 자식을 더 멀리 떠나보내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단풍나무는 열매에 프로펠러 모양의 날개를 달아 더 멀리 떠나보내고, 소나무는 그 씨앗이 발아래 떨어질 위험을 피하려고 비가 오면 솔방울을 오므린다. 비에 젖으면 씨앗이 멀리 갈 수 없기에 맑은 날 햇살이 좋을 때 다시 솔방울을 벌린다. 이때 적당한 바람이 불어주면 솔방울 씨앗이 멀리 떠날 수 있다. 이렇듯 자연은 자신의 새끼나 씨앗을 발아래 두려 하지 않고 멀리 보내려고 고민한다.
오늘날 독립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 사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캥거루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갈수록 캥거루족 연령층이 높아지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모와 동거하는 30~49세 자녀가 2010년 48만 4663명이라고 하니 10년 만에 ‘중년 캥거루족’이 배나 증가했다는 얘기다.
부모들에게 같이 사는 이유를 물었더니 “자녀가 경제적 이유 등으로 독립할 수 없어서”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진짜 캥거루 새끼는 크기가 2센티미터에 불과하고, 어미 배 주머니에서 젖을 빨다 대개 1년 안에 독립해 나간다. 캥거루 평균 수명 12~18년에 비해 아주 적당한 기간이다.
반면에 인간 캥거루족들은 커다란 덩치에 남부럽지 않은 학벌과 자격증을 갖추고도 독립을 꺼리거나 두려워하니 캥거루만도 못한 셈이다. 이 모든 원인을 경제적 불황과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하기에는 뭔가 불편한 점이 있다. 독립심이 부족한 자녀, 자식을 편안하게만 키우려는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오색딱따구리나 나무의 자식 사랑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부모가 자식에게 주어야 할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자식이 스스로 살 수 있게 안내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막10:6~8).
현대 부모에게 자식들과 이별을 고민하는 것은 물론, 이별을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