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항공모함 그리고 호국보훈의 달

등록날짜 [ 2012-06-26 13:39:09 ]

미국과 연합군사작전이 얼마나 유용한지 모르면
국제사회 정세도 국내 종북 세력의 위험도 몰라

대한민국과 미국 양국 간의 연합해상훈련을 미국 최신 항공모함이 참가하는 가운데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23일부터 3일간 서해상에서 진행한다.

항공모함 그리고 그 호위 함대와 지원 전력은 한 국가의 전투력에 버금가는 화력을 지니기에 특정 지역에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미국은 1950년, 6·25전쟁 때부터 항공모함을 5개월간 한반도 해역에 파견해 북한의 해상과 공중 전력을 차단했고, 1976년 북한군이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을 저질렀을 때도 항공모함과 호위함 5척을 동해로 진입시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했다.

또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때에도 한반도 주변 해역으로 항공모함을 출동시켜 북한의 우발적인 침략에 대비하도록 조치했을 뿐만 아니라, 1994년 6월 북한의 1차 핵무기 개발로 말미암은 한반도 위기 상황 속에서도 전쟁 억제력을 발휘했고 2000년 이후에는 거의 2~3년 주기로 한미 연합훈련을 위해 한반도 주변 해역에 항공모함을 출동시켰다.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북한 공산정권과 종북 좌파 세력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참한 결말을 가져오게 될 북한의 침략을 억제해 온 항공모함의 능력을 볼 때, 중국이 왜 러시아의 중고 항공모함까지 수입해 주변국 해역을 넘보는 데 사용하는지도 알게 해준다. 이처럼 군사강대국인 미국과의 연합전력은 북한이 지난 60여 년간 재차 남침하지 못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전면전이 아닌 기습적인 무력도발로 대한민국을 위협했다. 북한의 수많은 무력도발 중 대한민국 영해 무단침입에서 비롯한 2차례 교전이 1999년 6월과 2002년 6월에 일어난 제1, 2연평해전이다.

제1연평해전에서는 북한 전투함정 2척 침몰, 3척 대파, 사상자 70~200여 명이 발생했고, 우리 해군은 장병 7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때 반파해 퇴각한 북한 함정 중 ‘등산곶 684호’라는 경비정은 3년 뒤인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경 다시 북방한계선을 남하하려고 위협적인 기동을 했고, 이를 차단하려고 출동한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와 근접기동을 하는 과정에서 사전 경고 없이 기습적으로 함포와 기관포 공격을 하여 제2연평해전이 일어났다.

결과, 북한해군은 30여 명이 사상하고 ‘684호’ 경비정이 또다시 반파해 퇴각했다. 우리 해군은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하였으며 ‘357호’ 고속정이 침몰하는 아픔을 겪었다.

햇볕정책을 주장하던 당시 대통령이 북한과 관계가 악화할 것을 우려해 지시한 일명 ‘밀어내기 작전’이라 불리는 교전지침이 불러온 어처구니없는 희생이었다. 북한이 해상에서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려 할 때, 선제공격하지 말고 근접기동으로 밀어내며 북한해군 발포 시 대응사격을 대통령까지 허가받고 결정하라는 소극적 지침을 내렸다.
 
그 대통령은 교전 다음 날 일본으로 출국하여 한일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고 3일간 방일을 마치고 귀국했다. 훗날 그 대통령의 자서전에 기록한 내용을 보면, 제2연평해전 직후 북한에서 보내온 통지문에 ‘우발적 사고’로 적혀 있어 사태악화를 막고자 했다고 하니, 도대체 누구의 대통령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비인권적이고, 인간의 모든 자유를 억압하며, 수많은 우리 동포를 굶겨 죽이고, 주기적으로 대한민국에 무력도발을 일으키는 북한공산집단을 군사.외교적으로 자극하지 말고, 간섭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종북 좌파 세력의 언행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제라도 그 실체가 국민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보낸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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