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8-07 13:45:38 ]
세습 독재정권 무너지는 전 세계 바라보며
민주화 바람은 남북 관계에도 예외 아닐 듯
내전으로 비화한 시리아 민주 항쟁이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알레포를 장악한 반군과 이를 탈환하려는 정부군 모두 알 아사드 정권의 근거지인 알레포 수성에 운명을 걸고 있다. 민간인 인명 피해는 계속 늘어, 중동 독재자들을 무너뜨린 ‘아랍의 봄’이 시리아에 상륙한 이후 2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숨졌다.
시리아 민주 항쟁 목표는 현 알 아사드 독재정권 퇴진이다. 알 아사드 정권은 북한과 같이 부자세습 정권이다. 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에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에게서 정권을 물려받았다. 197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하페즈 알 아사드는 1982년 정권에 대항하는 다수 수니파 2만여 명을 학살했으며,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도 역시 자국민을 2만 명 넘게 학살하는 도살자로 악명을 떨쳤다.
벼랑 끝에 몰린 알 아사드 정권을 바라보는 북한 김정은의 심경이 편할 리 없다. 40년 넘게 철권통치를 해온 알 아사드 세습 독재정권이 무너질 경우, 3대 세습 독재를 하는 김정은 정권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또 북한과 시리아는 미사일 거래를 시작해 핵개발까지 협력관계를 돈독히 해 왔다. 2007년에는 북한이 시리아에 영변 원자로와 같은 원자로를 지어 주다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바 있다.
이런 관계를 반영이라도 하듯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내전이 치열한 중에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자신의 ‘정의로운 대의’를 지지해 준 데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북한과 시리아 세습 독재정권 사이에 동병상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른 나라 독재정권의 몰락과 위기가 북한에 위기감을 안겨준 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9년 12월 25일,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가 도피 중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붙잡혀 재판을 받고, 결국은 기관총 난사로 비참한 말로를 맞았을 때, 김일성과 김정일은 크게 위기의식을 느꼈다. 차우셰스쿠는 김일성과 ‘의형제’까지 맺은 관계였다. 김정일은 차우셰스쿠 부부 처형 장면을 비밀리에 입수해 핵심 측근들과 함께 보며 대책을 강구했다고 한다.
우연한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이후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군을 끌어안았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도 군을 경제발전 주역으로 내세우며 ‘쿠바식 선군정치’를 펼쳤다. 김정일이나 카스트로 모두 차우셰스쿠가 몰락한 직접적 원인이 군의 배신에 있다고 파악한 듯하다.
이제 시리아 민주화 투쟁이 앞으로 북한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다.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다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북한 김정은 정권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 주민이 중동 독재자들과 시리아 부자세습 독재정권의 몰락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면, 북한 내에서 민주화 압력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알 아사드 정권이 용케 버틴다면 조금 낫겠지만, 이미 ‘아랍의 봄’은 김정은 정권에게 대단히 불편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시리아 사태 전개와 북한의 행보를 연계해 보는 것도 향후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리가 될 것이다. 시리아 민주화 투쟁을 지켜보며 북한 김정은 정권이 앞으로 어떤 전략을 세워 갈 것인지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핵심 고려 사항일 수밖에 없다.
시리아 민주 항쟁이 성공하면 ‘아랍의 봄’에서 불어오는 민주화 바람은 북한 땅에도 불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먼 나라 시리아 사태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은 정권이 이 사태를 바라보며 개방의 문을 열 것인지 아니면 더욱 굳건히 닫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