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9-11 14:36:10 ]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처벌제도 강화보다
사회가 더 건강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최근 나주에서 발생한 여자 어린이 성폭행 사건 이후, 딸을 키우는 부모들은 물론이고 온 사회가 성범죄에 대해 거의 신경증 수준으로 불안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여성들이 밤길을 혼자 다니는 걸 두려워한 지는 이미 오래고, 자녀를 둔 부모들도 혹시 내 아이에게 끔찍한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더욱 아이들을 챙긴다. 나주 사건 이전에도 아르바이트 여대생이 피자 가게 주인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유사한 성폭력과 강간 사건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어디 여자들만 불안한가? 여의도에서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칼부림 사건까지 벌어져 이제 국민은 ‘누구나’ 그리고 ‘느닷없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일상에서도 움츠러들기 일쑤다. 마치 갱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살벌한 뒷골목 풍경이 우리나라에 재현된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성폭력, 강도, 살인 같은 흉악범죄자들을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여 사회를 바로잡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이번 나주 사건이나 더 오래전 발생한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이 겪은 상처와 평생 떠안을 고통을 생각하면 범죄자에 대해 분노가 치미는 것은 당연하다. 또 인간의 양심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극악한 죄를 저질러 한 인간을 철저히 망가뜨리고 그 가정을 파탄시킨 자들에게 그들이 한 행동을 똑같이 갚아 주어야 마땅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최근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이고 즉각적으로 범죄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 걱정이 된다. 악질 범죄를 철저하게 응징하고 관용을 베풀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칫 순간적 감정에 휩싸이고 흥분하여 좀 더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강력범죄와 잊을 만하면 뉴스를 장식하는 각종 성폭력 사건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구조와 방어막이 취약하고 사회 전체가 병들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살인과 성폭력은 우발적인 사건이거나 잔인한 일부 개인의 충동범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독버섯처럼 성장하는 불평과 불만, 그리고 공동체의 몰락이 낳은 병리적 증상이다.
사회가 지나칠 정도로 물질 만능주의를 추구하고 경제 양극화도 심화하여 증오와 폭력이 사회 전반에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썩은 사과 상자 비유로 설명했듯이 “사회가 타락하면 자연스럽게 악이 확산하고 평범한 사람들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상자 자체를 정화하려 하지 않고 썩은 사과만 골라내다 보면 나중에는 사과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이번 나주 성폭행 사건이 일반 서민에게 유독 충격을 주었지만, 사실 한국은 아동 포르노물의 유통과 생산에서 이미 세계 6위에 이르고, 성과 향락 산업 규모와 종사 인원도 어마어마할 정도로 성범죄를 양산할 기저가 마련되어 있다. 낙태나 청소년 임신, 원조교제의 수치도 여타 선진국보다 높다. 또 성에 대해 철저히 이중적이고 남성에 관대한 우리 문화와 철저한 자본주의적 배금주의는 인간 경시 풍조를 낳고 각종 성범죄를 양산하는 원인이 된다.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 전과자를 더욱 철저하게 관리하고 처벌을 엄격히 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면 사회 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하며 무엇보다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형제를 부활한다, 검문검색을 강화한다, 성범죄자들을 화학적으로 거세한다” 하며 가시적 성과에 매달리고 변죽만 울려서는 안 된다.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며(로12:21) 비둘기처럼 순결하면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마10:16).
위 글은 교회신문 <30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