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9-05 15:51:51 ]
일부 일본 정치인이 몰고 가는 우경화에
군국주의 망령 다시 살아날까 염려스러워
한·중·일이 영토문제로 격렬하게 대립하는 와중에 북한과 일본이 이번 주 중국 베이징에서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정부 간 회담을 했다. 북·일 과장급 대표들은 주중 북한 대사관에서 만나 앞으로 국장급 회담을 위한 의제를 조율했다. 회담 의제는 일본인 유해 반환 문제였지만 일본은 예상대로 일본인 피랍자 문제를 의제에 포함하려고 안간힘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피랍자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면 앞으로 회담도 개최할 수 없다며 북한을 압박했지만, 북한은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버틴 것으로 전해졌다.
서로 처한 궁지에서 탈출하려는 전략적 계산 속에 4년 만에 다시 성사된 이번 북·일 회담을 여러 가지 면에서 조명해볼 수 있지만,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기어코 의제에 올리려는 일본의 모습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 문제는 2002년 9월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협의했다. 당시 김정일은 전례 없이 1970년대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했다. 김정일은 일본인 납치 사건이 북한과 일본의 적대 기간에 발생했고 이를 솔직히 시인하고 싶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 대남 공작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게 하려고 일본 국민을 납치했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인 8명이 사망했으며 5명은 생존해 있는데 이들을 일시적으로 귀국할 수 있게 허용하겠다고 했다. 김정일의 폭탄 고백은 물론 5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일본의 경제지원 가능성을 배경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김정일의 고백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서는 김정일, 고이즈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인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일본 보수 언론과 유가족들은 여론에 불을 질렀고 고이즈미 총리는 귀국길에 데려온 피랍자 5명을 북한과 약속을 깨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후 북한과 일본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중국 베이징 등에서 국교 정상화 교섭을 했지만, 피랍자 의제화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일본 입장 때문에 번번이 무산되었다. 일본은 자국민 십수 명 납치 사건을 용서 못 할 인륜 범죄로 규정하고 수십 년째 북한에 대해 이를 말끔하게 해결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피랍자를 다루는 이런 모습은 일본인 위안부를 다루는 모습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며 이중적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과거사를 뿌리부터 부정하며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는 증거들과 성토에도 철저하게 짓뭉개며 부인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타이완, 네덜란드 여성들까지 수만 명이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를 강요당했고 그 증거가 넘쳐나지만, 일본은 애써 눈을 감고 군이 강제동원에 나섰다는 물증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우리더러 강제동원을 증명하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일본 자민당 총재 경선 출마가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자민당이 다시 집권하고 자신이 총리가 되면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등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일본 정부 입장에서 모두 고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주변국들을 과도하게 배려해 오늘날과 같은 사태를 맞았다는 것이다.
자국민 십수 명의 피랍 문제에는 악착같이 달려들면서 다른 나라 여성 수만 명을 강제로 끌어다 성노예를 시킨 범죄는 뿌리부터 부정하는 모습에서 일본의 미래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추락하는 경제와 국가 위상에 초조해진 탓인지 일본 정치인은 국민을 우경화로 몰아가고 있다.
독도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그리고 평화헌법 9조를 폐기하려는 일본 우익 모습에서 다시 일본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군국주의 모습이 보인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