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3-05 14:03:08 ]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만류와 반대에도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동안 수많은 도발에도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들던 중국까지 지난 1월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2087호에 찬성하며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지만,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다. 6자회담 당사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가 유엔 안보리뿐 아니라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역시 북한은 누그러지기는커녕 더욱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네바 군축회의에서는 “한국을 최종 파괴하겠다”고 핵무장을 염두에 둔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서울 불바다”를 연상케 하는 발언이었다.
이는 30년 넘게 변하지 않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다. 1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1990년대 초반 이후 30년 동안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와 미사일 시험 발사, 장거리 로켓 발사, 우라늄 농축 등 고비마다 예상을 뒤엎고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하는 초강수를 두며 핵무장의 길을 걸어왔다. 북한 정권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만큼 식량과 기름을 공급하는 중국의 반대도 먹히지 않아 중국의 체면이 크게 손상했다. 북한은 이렇게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와 역풍에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계획과 의도대로 핵무장 일정을 착착 밟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에 핵은 양날의 칼이다. 핵이 김정일과 김정은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자기 목을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과 관계개선을 조건으로 선(先) 핵 포기를 요구하고 있고, 핵 포기 없이는 대북 제재 해제도, 투자도 성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투자를 유치해 경제발전을 이뤄 보려는 전략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북한 경제의 대중 종속만 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핵을 쥔 손이 병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자신의 핵 개발과 경제난의 원인이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냉전 이후에도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중국, 베트남, 쿠바가 북한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북한 주장은 재고해 봐야 한다. 개혁개방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낸 중국과 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과 가장 유사한 길을 걷고 있는 쿠바 역시 정치적으로는 카스트로 정권이 건재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이 개방적이며, 여전히 어렵긴 해도 북한만큼 경제난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또 미국의 침공 위협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1980년대 후반 혹은 1990년대 초반, 구소련 붕괴 후 북한이 핵 개발 대신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했으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소련 멸망과 함께 많은 나라가 안보불안과 함께 핵 유혹을 느꼈지만, 모두 핵 개발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탈냉전과 함께 핵보유국으로 태어난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이란, 이라크, 리비아 등은 북한과 함께 핵 개발에 뛰어들어 이라크와 리비아는 타의 혹은 자의로 핵을 포기했고, 북한과 이란은 핵보유국을 목표로 치닫지만, 이것이 북한의 핵 개발을 정당화해 주지는 못한다. 현재 전 세계에는 핵 개발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안보불안에 시달리는 나라를 30개국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대만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들이 다 핵 개발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핵을 포기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대표적인 예로 리비아의 카다피를 들지만, 카다피도 독재자였으며 카다피의 최후가 리비아나 리비아 국민의 최후는 아니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정권은 주체사상을 통해 북한 주민을 정권과 공동운명체로 만들어 놓아 더욱 핵 포기가 어렵게 되었다. 북한에는 핵 보유도 해답이 아니며 이제 와서 핵 포기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가 되었다. 수십 년째 계속된 불안한 국내정치와 경제난이 핵 문제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북한은 몇 년 안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우려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웅수 집사
KBS 기자, 네트워크부 팀장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32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