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2-18 11:31:51 ]
삶을 온통 바치는 고통의 시간이 있어야
짜릿한 감동을 주는 ‘성공’도 가능한 것
언론이 동계올림픽 소식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텔레비전도 주요 경기장면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내보낸다. 필자는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고 스포츠도 좋아하지 않는다. 손에 땀을 쥐고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분해서 경기를 본 적은 없지만 신문으로도 현장 분위기를 충분히 체감할 수는 있다.
모처럼 한국에 금메달을 선사한 이상화 선수의 멋진 투혼을 인터넷 신문으로 접했다. 선수들처럼 직접 경기에 참가하지 않아도 우승한 선수가 팔을 힘껏 치켜들고 감격에 겨워 포효하는 장면을 보면 우리는 그 환희를 고스란히 느낀다. 관중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선수는 자국 깃발이 시상대에서 휘날릴 때 벅찬 눈물을 흘린다. 이때만큼 운동선수가 멋있고 광채 나는 슈퍼스타로 보이는 순간도 없다.
하지만 열광하는 관중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엄청난 땀과 눈물을 흘린 선수들의 속마음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 카메라는 화려한 우승 순간만을 따서 보여 줄 뿐이다. 우승을 달성하고자 4년, 아니 그 이상을 날마다 자신과 싸워야 했던 선수들의 고독과 핏빛 투지까지 생생하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본 굳은살 잔뜩 박힌 이상화 선수의 발이 그러한 고통스러운 노력을 말없이 증언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상화 선수는 여름 내내 8㎞ 산악코스를 자전거로 달리며 체력을 키웠다고 한다. 허벅지 힘을 키우려고 170kg짜리 바벨을 드는 훈련도 반복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랜 훈련과 강도 높은 근력 운동으로 근육이 팽창해 하지정맥이 허벅지까지 올라와 많은 고통을 받으며 울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빙상의 여제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 기량을 뽐내는 김연아 선수도 하루 7시간씩 강훈련을 소화하며 소치올림픽을 준비해 왔다. 훈련 결과로 늘 따라다니는 허리와 다리 부상의 고통과 싸우며 말이다.
어디 이런 스타 선수들뿐인가? 아직 대중에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많은 선수가 자신이 지닌 최고 기량을 발휘하고 실수하지 않고자 날마다 지옥 같은 훈련을 감내하며 올림픽을 준비하였다. 언젠가 복싱 선수가 체중을 조절하려고 정말 고통스럽게 식이요법을 감행한다는 기사를 보고 ‘운동선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스포츠가 상업화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여전히 큰 재미와 짜릿한 감동을 주는 휴먼드라마가 펼쳐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이런 면에서 스포츠 경기는 삶에 큰 교훈을 준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영광이나 성과를 오랜 수고와 희생 없이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보면 잠잘 것 다 자고 놀 것 다 놀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좋은 성적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잠이 모자라 늘 피로해하고, 반복된 일과가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이를 견디고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은 학생들이 최후에 웃는다.
또 어떤 분야에서 특출한 전문가로 인정받거나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남보다 자기 삶을 더 희생하고 사적인 즐거움이나 여유를 누리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최종 결과만을 보고 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자신이 그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탄한다.
성경은 절대 세속적 성공이나 출세를 미덕으로 권장하지 않지만, 사람은 누구나 심은 대로 거둔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고스란히 가져온 게으른 종을 처벌한 달란트 이야기도 이런 암시라 할 수 있다(마25장). 만약 당신이 별로 노력하지 않고 성공을 바란다면 이 어리석은 종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김 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37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