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북한이 자극한 일본 우경화 현상

등록날짜 [ 2013-05-08 11:49:23 ]

“일본이 돌아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 방문 중이던 2월 22일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아베는 “내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일본도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2차 아베 내각이 갈 길을 예고했다.

이후 아베는 우익 성향 인터넷 방송 박람회에서 자위대 부스를 방문해 군복 상의와 전투모를 착용하고 탱크에 올라 젊은이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가 하면, 미 연합군 점령 통치 주권 회복 기념식에서 “천황 폐하 만세” 삼창을 외쳤다. 또 2006년~2007년 첫 총리 임기 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것이 ‘통한(痛恨)’이라고 말했던 아베는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대놓고 두둔하고 나섰다. “국가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영령에 존경과 숭배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한국과 중국의 비난을 일축했다.

주지하다시피, 야스쿠니 신사에는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어 있기 때문에 총리나 각료의 공식 참배는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오사카 법원도 2005년 위헌으로 판결했으나 아베는 자국 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있다. 아베의 귀환 이후 일본은 이렇게 거침없이 보수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일본의 보수 우경화는 탈냉전 이후 새로운 국가 진로 모색과 걸프전을 계기로 본격화된 미국의 전략적 요구, 경기침체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큰 흐름을 형성해 왔다. 하지만 일본 우익들에게 가장 좋은 핑곗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북한이라는 점은 생각해 볼 일이다.

2006년 9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아베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미사일 기지 선제공격론’을 내세우며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일본인 납치 사건과 관련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대북 강경론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이후 아베는 일본 보수 우파의 기대를 한 몸에 떠안으며 두 번째로 총리에 취임하기에 이른다.

일본 우경화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인 군사 대국화 역시 북한이 좋은 빌미가 되고 있다. 북한의 핵 야망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난하지만 내심으로는 반기며 군사 대국화의 걸림돌인 평화헌법 9조 개정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2007년 초 일본은 아베 첫 총리 시절 이미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해 헌법 개정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두 번째로 총리가 된 아베는 지난 3월 9일 BS 아사히 방송에서 유엔군 참여 가능성에 대비해 헌법 9조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속내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7월 참의원 선거 이후에는 일본에서 안보 기본법 제정 문제 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제대국에 어울리는 정치·군사 대국화로 대변하고 있는 일본의 보수 우경화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테러 전략과도 맞아떨어져서 국내외에서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은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사건을 계기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등에서 미국과 협력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다. 또 자위대는 미국의 역할 증대 요구에 따라 해외에 파병돼 각종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1990년대 말 이미 세계 군사력 2위를 차지한 자위대는 사실상 정규군이나 다름없이 변모했으며 헌법 개정이라는 법적 장애가 제거되면 일본은 숙원대로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변신하게 된다. 더구나 일본은 아베 총리 직속 기구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 간담회’의 야나이 순지 위원장이 2월 “한국과 호주도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대상”이라고 말해 군사 대국화에 관한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말은 한국이 공격당하면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일본군이 욱일승천기(제국시대에 사용한 일본 군기, 일본 자위대 깃발)를 앞세워 진군해 올 가능성도 함축하고 있다. 북한을 촉매제로 한 일본의 우경화가 동북아와 한국의 안보에 새로운 먹구름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이웅수  집사
KBS 국제부 기자
교회신문 편집실

위 글은 교회신문 <33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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