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사랑과 미움의 같은 점과 다른 점

등록날짜 [ 2013-12-18 08:55:22 ]

상대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하기에 갈등 생기는 것
하나님과 이웃을 중심에 두는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

철학자 플라톤은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한 대화록이 많다. 플라톤은 오늘날에도 큰 깨우침을 주는 주제들을 다루었는데 가장 흥미로운 책 하나가 바로 ‘에로스’(사랑)를 주제로 삼은 『향연』이다.

향연은 그리스 사람이 가까운 지인을 불러 함께 먹고 마시면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형식을 일컫는데 『향연』은 아가톤이라는 사람의 집에 7명이 모여 사랑의 본질을 자유롭게 얘기하는 내용이다. 플라톤 작품에서 가장 문학성이 뛰어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자 사랑을 주제로 한 가장 오래된 철학서다.

이 책을 보면 에로스(사랑)는 태초부터 있던 것으로 만물을 탄생하게 만든 힘이며, 좋은 것의 원인이고, 인간을 초월적 세계로 향하게 만드는 동력으로 설명한다. 에로스는 또한 육체적 사랑으로 남녀가 서로 연모하고 결합하게 하는 원천이다. 에로스는 인간을 하나 되게 만들며 서로 집착하게 한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결합하며 서로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도 에로스 덕분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에로스가 채울 수 없는 어떤 결핍에서 비롯되며 절대 만족을 모른다고 경계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에로스는 아름다움이나 선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갈망하는 탐심의 원천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대체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는 타인이나 어떤 대상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자신을 중심으로 상대를 통합하려는 부정성도 존재한다. 또 자신의 사랑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거나 거부되면 사랑의 감정은 금방 원망으로 바뀌고 미움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정신분석가 프로이트는 사랑과 미움은 사실상 같은 감정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사랑은 분명 인간을 변화시키고 타자로 향하게 한다. 자신의 이기심에 기초하고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절제되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부모나, 상대방을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의 예를 생각하면 된다. 이기적 정념에서 비롯되는 사랑은 상대에 대한 헌신의 형태를 띠지만 자칫 상대를 억압하거나 괴롭게 할 수 있다. 정신장애 중 하나인 ‘스토커’는 어떤 사람을 지나치게 사랑하면서 이 사람을 위해 모든 열정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상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면서 괴롭히는 폭력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다. 스토커는 상대가 무조건 자기 뜻을 따라주기만을 강요한다. 상대가 자신을 거부하면 이 사랑은 곧 무시무시한 증오로 바뀐다. 자식에게 특정한 진로나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이뤄줄 것을 바라며 애정을 쏟는 부모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식이 부모의 기대와 바람에 부응해 행동해 준다면 해피엔딩이지만, 행여 자식의 생각이 부모와 다르면 계속 충돌이 발생하고 부모는 자식의 행동을 사랑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들여 갈등하게 된다.

사실 에로스는 좋은 것이지만 자연적인 자기중심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 있으며 모든 갈등의 뿌리가 된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사랑은 항상 이런 맹목성과 일방적 편향성을 갖기 마련이다. 진정한 사랑을 이루려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철저하게 버리고 낮아져야 한다. 아가페(절대적 사랑)가 에로스와 다른 것은 이러한 이기적 본성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사회갈등이 유난히 심한 지금은 나 중심의 에로스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중심에 두는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아가페적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김 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3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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