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9-11 09:19:08 ]
지난달 21일 새벽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교외에 화학무기를 탑재한 로켓 공격으로 1300명 이상이 숨졌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어린이들이었다. 유엔은 사린가스로 추정했다. 사린가스는 1988년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할라브자에 뿌려 쿠르드족 5000명이 숨지고, 1995년 3월 일본 도쿄 지하철에 옴진리교가 뿌려 유명해진 맹독성 신경가스다. 시리아 반군과 인권 단체 등은 정부군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정부군은 반군 소행이라고 반박했다.
화학무기 사용이 확인되자 당장 시선은 미국으로 쏠렸다. 미국이 지난해 시리아에 대해 ‘화학무기 사용’을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레드라인)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부군 소행이라고 했다. 로켓 공격에 앞서 정부군 장교들의 교신 내용을 감청한 결과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공습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쏟아졌고 공습 시기와 규모, 대상 등에 관한 언론보도와 분석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관측을 일거에 뒤집는 일이 일어났다. 군사 작전에서 늘 미국의 제1 협력자인 영국이 시리아 군사작전에서 발을 뺀 것이다. 영국 캐머런 총리는 의회가 시리아 무력제재안을 부결하자 곧바로 시리아 군사작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이 이탈하자 미국은 계획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영국이 보여준 대(對) 시리아 군사작전에 대한 회의는 미국 국내 여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미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해외 군사개입에 대한 이런 회의론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 실패의 암운이 드리운 결과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궁지에 몰렸다. 당장 시리아를 공습할 수도, 공습하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몰렸다. 2011년 3월 리비아 군사작전 때와는 시리아를 둘러싼 국내외 상황이 다르다. 시리아는 리비아보다 복잡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리비아 군사작전을 선언했을 당시,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는 시리아를 강력하게 변호하고 있다. 또 2년 전 아랍연맹은 카다피 축출을 지원했다. 하지만 현재 아랍연맹은 아사드 정권 공격을 지원하지 않는다. 시리아의 동맹국 이란은 시리아 항구를 통해 지중해를 들락거리고 있고, 중동에서 제1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뒷마당에 있다. 자칫 중동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국내적인 상황도 시리아가 리비아보다 훨씬 복잡하다. 리비아는 대부분 수니파 아랍 족이다. 그러나 시리아의 인종 구성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시아파 분파인 소수 알라위파가 다수 수니파 아랍 족들을 통치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인과 드루즈파가 있다. 이들 소수파는 현재 반군인 수니 아랍족들이 통치할 경우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두려워하고 있다. 더구나 시리아는 리비아처럼 석유가 많이 나지도 않는 데다 경제가 붕괴상태다.
또 2년 8개월 가까이 내전을 치르면서 인구 2400만 명 중 3분의 1 가까운 700만 명 정도가 난민 상태에 있다. 200만 명은 이웃 나라들로, 500만 명은 국내를 떠돌고 있다. 이런 시리아에 군사개입을 하면 이라크처럼 다시 수렁에 빠질 것을 미국은 두려워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군사작전을 결정할 수 있지만 의회에 동의를 구하기로 했다. 의회에서 공습이 부결되면 미국이 중동에서 미치는 영향력에 타격을 입을 것이다. 공습하게 되더라도 위험 부담이 크다. 화학무기 사용을 응징하기에 앞서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미국을 동맹국들은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도 여기에 해당한다.
시리아 화학무기가 예사롭지 않은 점은 북한이 미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화학무기 (2500~5000톤)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북한과 시리아의 돈독한 군사적 협력관계를 고려할 때 시리아의 화학무기 일부가 북한제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과 시리아는 유엔 화학무기 금지협력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북한은 분명 미국이 시리아를 다루는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 응징에 실패하면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체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공산도 크다. 북한의 화학무기는 그동안 핵 문제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핵보다 더 큰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아 사태가 북한의 화학무기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며 한국의 안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국제부 팀장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35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