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타파해야 할 후진 봉건문화

등록날짜 [ 2014-12-15 19:33:37 ]

사회가 발전하려면 제도 못지않게 의식도 중요해

새 시대에 맞게 나쁜 관행은 없애고 바로 잡아야

 

우리는 분명 21세기를 살고 있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봉건시대에나 있을 법한 영화 같은 일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그래서 가끔 우리가 여전히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많다.

 

봉건시대는 신분 간에 엄격한 구별이 존재하고, 계급질서가 사회를 얽어매서 백성을 오직 다스림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불평등 사회다. 예컨대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의 위계가 있어 계급이 다르면 혼인도 금지되었으며, 평민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양반에게 천대를 받았다.

 

지배층도 국왕을 정점으로 품계와 벼슬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았다. 천민의 자식은 아무리 똑똑해도 과거를 볼 수 없었고, 양반이 노비를 마음대로 부리거나 사적으로 형벌을 가할 수도 있었다.

 

서양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장원을 중심으로 영주와 이들을 보필하는 기사의 신분질서가 피라미드처럼 존재했고, 최하층 농노는 아무런 권리도 없이 소나 말처럼 지배층을 먹여 살려야 했다.

 

서양에서 근대는 이러한 봉건 질서를 타파한 시민혁명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개인의 인권을 소중히 하고 정치 참여를 확대하여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몸만 자라고 정신은 여전히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는 정신장애인처럼 빠른 경제성장과 정치 변혁에도 봉건 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양반과 상놈 구별은 없어졌지만 돈과 정치적 힘에 따른 구별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 상류층은 선민의식에 젖어 국민을 하찮게 보며 그 위에 군림하고, 권위적 조직문화가 사회를 지배한다. 재벌과 부자, 그리고 정치인과 관료들이 그들만의 카르텔(동맹)을 형성하여 힘없는 서민을 억압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평등한 존재라고 교과서에서 배우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갑과 을이라는 너무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돈을 많이 벌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아랫사람이나 피고용인을 중세 때 노비처럼 함부로 대하는 착취 문화가 존재한다.

 

이번에 벌어진 모 항공 회항 사건도 이런 봉건의식이 빚은 해프닝이다. 비행기에 탔으면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승객일 뿐인데 승무원이 잘못한 것에 화가 나 소리를 지르다 못해 이미 출발한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 자신이 모 항공 오너의 가족이고 임원이니 맘에 안 들면 비행규칙이나 관행도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다는 특권의식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비슷한 일이 어디 한두 번 벌어졌나. 예전에 어떤 재벌 총수는 아들이 맞았다고 경호원을 동원해 가해자를 폭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 일반 시민 간에도 이런 차별의식이 존재해서 마트 같은 곳에서 서비스를 하는 노동자들이나 아파트 경비원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고 모욕하는 일이 흔하다.

 

사회 곳곳에서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상대를 짓밟거나 성적으로 학대하는 일도 많아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만인에게 적용되어야 할 법은 약한 자에게만 엄격하고 재벌이나 정치인들은 큰 불법을 저질러도 쉽게 사면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등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방, 특정 학교 출신이어야 사회에서 주류가 될 수 있는 골품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이런 봉건문화는 사회 통합과 상식이 통하게 만드는 것을 가로막으며 결국 나라를 갈라놓는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제도 못지않게 의식이 중요하다. 비합리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대응하지 말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봉건적 관행을 척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눅5:38).

 


/ 김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41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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