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미국-쿠바 적대관계 청산, 혼자 남은 북한

등록날짜 [ 2014-12-23 16:14:34 ]

미국과 쿠바가 53년에 걸친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는 실로 현대사에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카스트로가 1959년 혁명을 일으켜 독재정권을 전복하고 1961년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 이후 반세기만이다.

 

독재정권을 전복하고 집권한 카스트로가 북한 김일성과 더불어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재자가 된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카스트로는 1962년 강대국 미국에 맞서 소련 핵미사일을 몰래 들여왔다가 ‘쿠바 핵미사일 위기’를 초래하고 미·소는 전면 핵전쟁의 위기 직전까지 갔었다.

 

미국은 이후 쿠바를 심대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하고 카스트로 암살과 정권 전복을 시도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쿠바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지만 미국은 국제사회 예상과 달리 쿠바에 대해 봉쇄만 했을 뿐 본격적인 국가전복을 시도하지 않았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것 같던 쿠바와 미국의 화해는 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으며 오직 국가 이익만 있을 뿐이라는 명제를 확인해 준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카리브 해의 쿠바가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시선은 동북아의 북한에 쏠리고 있다. 강력한 공산독재국가로 남아 동병상련의 입장이었던 쿠바와 북한이 걸어온 길이 유사하고 오늘의 북한이 있기까지 쿠바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962년 ‘쿠바 핵미사일’ 위기가 그것이다. ‘쿠바 핵미사일’ 위기에서 당시 소련의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쿠바에 배치했던 핵미사일을 철수하면서 미국 케네디 대통령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고 북한은 신뢰할 수 없는 소련을 비난하며 어려운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국방 건설에 나서게 된다. ‘경제·국방 병진노선’과 ‘4대 군사노선 채택’이 그것이다.

 

북한이 본격적인 군사국가화로 나아가며 경제는 어려워졌고 이후 구소련과 동유럽 붕괴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 없지만 쿠바 위기가 없었더라면 당시 북한이 군사보다는 경제 건설에 더 매진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해 볼 수 있다.

 

쿠바도 북한처럼 ‘특별한 기간’이라는 쿠바식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하지만 쿠바는 북한처럼 아사자가 나오지 않았다. 굶주리는 인민들을 방치했던 김일성·김정일과는 달리 카스트로는 외국에서 영양제를 대량으로 수입해 쿠바 인민들에게 나눠 줄 만큼 인민들의 아사를 막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또 북한처럼 탈북자들을 잔인하게 탄압하지도 않았다.

 

카스트로는 한때 ‘배신자는 가라’며 미국으로 가는 쿠바 난민들을 전혀 가로막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간 쿠바 난민이 수백만 명에 달했고 이에 화들짝 놀란 미국이 오히려 쿠바 정부에 난민 단속을 요구하며 난민 수를 제한하는 협상을 벌이기까지 했다.

 

또 북한과 마찬가지로 쿠바 역시 구소련 붕괴 이후 쿠바식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체제 위기를 넘겼다. 북한과 방식은 달랐지만 쿠바는 군을 개혁의 주체세력으로 내세웠다. 카스트로는 군 장성들과 지도자들을 외국에 파견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공부를 하게 했고 이들은 돌아와 쿠바 경제개혁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쿠바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공산독재를 유지하면서도 교육이나 의료, 복지 등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북한의 선군정치와는 구별되는 점이다.

 

사실 북한은 쿠바보다 훨씬 먼저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할 기회가 있었다. 북한은 1차 핵위기 당시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타결하면서 평양에 연락사무소 설치 등 관계 정상화 일정을 마련했지만 김정일은 체제 내부에 미칠 부작용을 심각하게 우려해 이를 뭉갰다.

 

쿠바의 대미 관계 정상화로 북한은 더욱 고립하게 됐다.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통해 꽉 막힌 대중, 대일, 대남, 대미 관계에 돌파구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린 러시아는 ‘썩은 동아줄’이 됐다. 믿었던 쿠바마저 미국과 손잡고 떠나면서 이제 국제 미아 신세가 된 북한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정치부 통일안보외교팀장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41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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