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4-14 23:53:54 ]
한일 관계가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앞으로도 악재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2일 홈페이지에서 한국에 대해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을 삭제했다.
2월 아베 총리가 국회에서 행한 시정방침 연설에서 ‘기본적 가치 공유’ 언급을 뺀 이후 아베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 4월 6일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에 이어 다음 날 일본 정부 외교청서 발표로 일본은 독도 도발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또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야스쿠니 춘계예대제가 있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예상된다. 이어 아베 총리는 29일 미국 상·하 양원에서 합동연설을 한다. 8월 15일 광복 70주년에 있을, 이른바 아베 담화는 연이은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는 민간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발표를 보면 지난해 한일 간 수출과 수입액, 즉 교역액은 859억 5200만 달러로 2013년보다 9.2% 줄었다. 올 들어서도 1월과 2월 두 나라 사이 교역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이상 줄어 4년 연속 양국 간 교역액 감소가 예상된다.
무역협회는 엔저 기조 속에 한일 간에 교역 감소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항공여객 수요도 줄었다. 지난해 한일 노선의 항공여객은 2% 줄었다. 한일 간 정치적 갈등과 엔저 현상으로 2013년 1152만 명에서 2013년 1095만 명으로 4.9% 줄었고, 지난해엔 1078만 명으로 1.6% 줄었다. 유럽과 미국, 중국 등 국제선 노선 중 유일하게 한일 노선만 승객이 줄었다. 한일 통화 스와프 협정 역시 두 나라 간 자존심을 건 신경전 끝에 지난 2월 14년 만에 종료됐다. 경색된 양국 외교관계 때문에 연장되지 않았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두 달 뒤인 10월 만기가 도래한 570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가 연장되지 않았고 2013년 7월에도 만기를 맞은 30억 달러가 그대로 종료됐다. 대외적인 충격에 대해 서로 돕자는 취지의 호혜적인 통화 스와프가 정치 외교적 논리로 중단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일본으로 기우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달 초에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지난해 2월 한국 방문 시 “한국과 일본이 역사를 극복하고 관계를 진전하는 것이 좋다”며 과거보다는 미래를 강조했다.
또 로버트 샤피로 전 미국 상무부 차관은 지난해 12월 악화된 한일 관계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은 수백억 원의 예산을 쏟아 유력 정치인들을 일본에 초청하고 있고 거액을 들여 로비스트를 고용해 미 정치권을 공략하고 있다. 또 미국 학계 내 지일파 학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에서 일본 논리를 확산하고 있다.
독도와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외교적 공세에 밀리는 가운데 한일 관계 악화의 좀 더 근본적 원인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한·중·일 3국의 위상 변화라는 것이 일본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고 중국의 부상과 함께 일본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일본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진창수 센터장은 한일 관계가 이 같은 구조적 변동기에 한동안 악화 일로를 걸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진창수 박사는 한국이 생각하는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졌고, 일본인들이 인식하는 한국의 가치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진창수 박사는 일본을 고립시켜 얻는 이익보다 일본과 관계를 돈독하게 개선함으로써 대중국 관계에서 지렛대를 갖는 편이 한국에 전략적 이익이 된다고 지적했다. 12일부터는 미 워싱턴에서 한·미·일 외교차관 회의가 열리고 16일부터는 역시 워싱턴에서 한·미·일 3자 안보토의가 열린다.
미국이 안보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중재해 한일 관계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안보와 과거사 문제는 투 트랙 전략으로 분리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의 도발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사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둘러싼 미·중 경쟁 속에 국가 이익을 지켜 나가는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43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