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진퇴양난에 처한 한국 외교

등록날짜 [ 2015-05-13 23:19:45 ]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두 가지 딜레마에 처해

동북아에서 한국의 역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지난 4월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일본 아베 총리는 미국 의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아베 연설에 대한 한국의 비판적 분위기와 정반대로 미국 정계는 아베 연설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 워싱턴 정가에는 한국의 중국 경도론과 한국 피로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 의회 연설에 앞서 중국 시진핑 주석과 반둥회의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시진핑 주석과 아베 총리는 웃음 띤 얼굴로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중국이 대일본 실용외교로 돌아섰다는 징후로 해석되면서 한국 외교는 궁지에 몰렸다. 한국은, 중국이 미리 일본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것을 한국에 알려 주었지만 국제정치 또는 외교와 관련 없어 보이는 교육 부총리를 보낸 것도 문제였다.

 

여기에 또 악재가 겹쳤다. 일본이 한국인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에 대해 뒤늦게 회원국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나서면서 뒷북외교라는 비판이 가해졌다. 외교부는 사실상 등재권고를 막을 방법이 없음을 시인했다. 쏟아지는 비판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과도한 해석”이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 외교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풀리지 않는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두 가지 딜레마에 처해 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5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단체 대북비료지원을 승인했다. 또 이달 1일에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의 남북교류를 폭넓게 허용하겠다는 취지의 ‘민간교류 추진 관련 정부 입장’도 발표했다.

 

이어 지난 4일에는 민간단체의 6·15 공동선언 발표 15주년 공동행사 등을 위한 남북 사전 접촉도 승인했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북한은 5·24 조치 해제부터 주장하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또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일방적으로 요구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남북관계나 한일관계 모두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게 공통의 인식이지만 북한의 도발 위협이 상존하고 있고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적 행보가 계속되는 한 신뢰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에 미·중 간 대립 격화는 한반도 상황을 더욱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로 힘겨루기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일은 방위협력 지침을 개정해 안보분야에서 대중 압박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일본 주변을 벗어나 전 세계에서 미군과 공동작전이 가능해졌다.

 

경제 분야에서 미·일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은 아시아투자인프라은행(AIIB)에도 가입하지 않아 미국으로부터 의리를 지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지원 아래 군사대국화, 보통국가화의 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정 압박으로 대외전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에 일본은 더할 나위 없는 지원군이다.

 

한국 외교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와중에 판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4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 외교는 운신의 폭이 대단히 좁다. 오는 8·15 종전 70주년 담화에도 아베가 과거사 관련 사죄를 담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미·일 동맹 강화가 한·미 동맹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북한의 도발에 대해 더 확고한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지만 소외감은 떨치기 어렵다. 정부는 과거사 문제는 문제대로 일본과의 협력은 협력대로, 투 트랙 전략을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은 피부로 느낄 수 없다.

 

다음 달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도 예정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통해 한일관계와 동북아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제안을 할지 모두 주목하고 있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43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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