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6-23 18:33:17 ]
#1.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6.25사변’ 대신에 ‘한국전쟁’이란 말이 관련 학계는 물론 일반 언론에서도 훨씬 많이 쓰이고 있다.
과연 ‘6.25사변’과 ‘한국전쟁’은 동일한 의미일까? 두 용어 사이에는 ‘이념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6,25사변’이란 말은 역사적 사실로서 북한 김일성 정권이 중국, 소련과 사전 합의하고 1950년 6월 25일(주일) 아침에 불법적으로 남한을 침입한 사건을 강조하는 ‘전통주의적’ 해석을 반영한다.
반면에 ‘한국전쟁’이란 용어는 미국 시카고대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로 대표되는 이른바 ‘수정주의’ 흐름과 일면 맞닿아 있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981년과 1990년 미국에서 『한국전쟁의 기원』 1, 2권을 잇달아 출간한 커밍스는 한국전쟁(the Korean War)을 ‘정상적인’ 탈식민지화를 경험한 북한이 ‘시대착오적’인 사태 발전을 경험하고 있던 남한을 해방하고자 한 내전(內戰, civil war)으로 보면서, 이 전쟁 도발의 책임 문제에 김일성보다 미국에 의한 전쟁의 유도나 음모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동안 한국의 학계에 수정주의 열풍이 휘몰아친 바 있다.
#2. ‘한국전쟁’이란 호칭은 영어의 ‘Korean War’를 번역한 말이다. ‘한국전쟁’이란 말에는 우리의 전쟁을 외국인의 제3자적 측면에서 보려는 의도가 함축되어 있다. ‘한국전쟁’이란 말이 유행하기 전에는 6.25남침, 6.25사변, 6.25동란이란 말이 널리 쓰였다. 이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란 말에서는 우선 ‘전쟁’이란 말이 문제다. 전쟁(戰爭)은 국가와 국가 간에 발생한 무력 충돌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헌법에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반란 집단, 또는 반(反)국가단체로 간주하기 때문에 전쟁이란 용어는 타당하지 않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남북전쟁을 전쟁이라 부르지 않고 ‘남부의 반란’이라고 불렀다. 링컨은 남부정부를 그들이 자칭하는 남부동맹(Confederacy)이라고 한 번도 불러주지 않았다. 링컨은 연설할 때 항상 ‘반란 집단’이라고 불렀다. 남북전쟁이나 남부동맹이라 부르면 남부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란 말에는 ‘6.25사변’을 마치 구경꾼처럼 보는 듯한 방관자적 시각이 들어 있다. 북한 정권은 6.25남침을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르고,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 즉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도와서 싸운 전쟁이란 의미로 쓰고 있다. 쟁점이 있는 사건의 용어를 정확하게 쓰지 않으면 적(敵)의 언어 전술에 휘말려 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에서 체험했다.
김일성이 스탈린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여 일으킨 6.25사변으로 말미암아 한반도에서는 약 300만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이런 막대한 인명 손실을 당했다면 이 사변에 대한 정리된 생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3. 6.25를 그냥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고 해버리면 그것은 아무것도 남기는 바가 없는 무의미한 사건이 되어버린다. 300만 명이 흘린 피가 이 강토에 뿌려진 사건의 의미는 허무할 수도 없고, 허무해져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6.25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부정하려는 세력들이 큰소리를 쳤다. 그러다 보니 6.25를 북한 정권의 입장에 서서 조국해방을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었다고 인식해 버리고, “형제가 형제의 가슴에 총을 겨눈 아픈 기억”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거기에는 가해자가 없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도, 책임을 추궁할 사람도 없다. 강도 살인의 피해자 가족이 살인범에게 “우리는 다 같은 피해자”라고 한다면 여기에 무슨 정의가 있고 가치관이 있겠는가.
6.25는 형제가 형제의 가슴에 총을 겨눈 아픈 기억이 아니라,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선량한 대한민국 동포들의 등을 비수로 찌른 범죄의 기억이며, 우리 국군이 16개국 유엔군의 도움에 힘입어 다시 일어나 침략군을 휴전선 이북으로 물리친 사건이다.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그 의미에 담긴 뜻을 바로 알지 못한다면 6.25사변과 관련한 왜곡된 시각을 받아들이게 되고, 우리 선배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쌓아올린 영광의 기억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작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이들이 바라는 첫 번째 목적이 아니겠는가.
정재형 편집장
위 글은 교회신문 <43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