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8-12 00:55:53 ]
아베 담화 발표가 며칠 남지 않았다. 패전일인 8월 15일을 피해 14일 발표가 유력하다. 전후 70주년을 맞아 발표되는 아베 담화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지에 국내외의 관심과 우려가 쏠려 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달리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가 담화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과 중국 등에서 반성과 사죄 요구가 빗발치고 있고 국민 절대다수의 반대에도 안보법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가 내놓은 보고서는 침략은 인정하지만 반성은 없고 노무현 정부의 반일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을 한일관계 악화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 아베 담화가 이 보고서와 맥락을 같이할 경우 한일관계 정상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는 우리가 아베 담화에 집착해 경색 국면을 계속 끌고 가기 어렵다는 데 있다. 더구나 아베 총리가 담화에 한국 식민지배 내용이 아닌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과 후회, 전후 평화국가로서 걸어온 길, 국제사회 공헌 등을 담는다면 우리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질 수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이 지나치게 중국에 기울어 있고 한일관계 경색이 한미일 3국 협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여론이 고개를 든 지 오래다. 일본이 이 정도 했으면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우리가 처한 안보 상황은 더욱 불리하다.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기념일 전후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 사이에서는 어느 때보다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간에는 지난 2012년 군사정보포괄협정(GSOMIA) 체결이 무산된 바 있고 지난해 12월에는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에 서명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외교적인 상황도 좋지 못하다. 일본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강제 노동한 중국 노동자들에게 사죄하고 보상하겠다고 결정하면서 중국에서도 입장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는 다음 달 중일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다음 달 미국 방문에 앞서 그전에 중일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예견되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다음 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전 70주년 열병식에 아베 총리의 참석을 끌어내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용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일 간 해빙 무드는 한국을 고립하기 위한 아베의 전략이다.
더구나 아베는 한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별로 고심하지 않는 듯하다. 지금까지 위안부나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에서 아베는 한국 정부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 6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에 양국 정상이 상대국 대사관이 주최한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하면서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잠시 일었지만 이후 진전이 없다. 또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를 합의로 해결하면서 다시 기대가 고조됐지만 일본이 하루 만에 ‘강제성’을 부인하면서 상황은 오히려 악화했다. 아베 정권에서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진정성 있는 과거사 반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아베 담화의 문구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일관계 새 판을 짜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변화된 환경을 반영한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 민주화로 일본은 한국 관계에서 더는 예전과 같은 우월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광복 70주년,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인 올해 과거를 뛰어넘는 새로운 한일관계가 요구되고 있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44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