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9-01 14:40:16 ]
1910년 8월 29일은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치욕(恥辱)의 날이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실질적 통치권을 잃어 일본 제국에 정식으로 편입됐고, 이때부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 나라를 잘 지켜야 한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세계2차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되었다. 3년 후 믿음의 사람 이승만 박사는 사회주의를 선망하는 백성들,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정치인들 속에서 남한에 시장경제, 자유 민주주의 정권을 세웠다. 김일성은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웠다.
남북으로 분단된 지 70여 년이 지났다. 김일성 일가의 독재체제하에서 인권을 유린당한 채 비참하게 죽어 가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일제치하보다 더욱 고통스런 삶이 되어 버린 현실이 가슴 아프다.
하루빨리 남북통일을 이루어 북녘 동포의 삶에도 행복이 깃들게 해야 한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로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통일을 이루어 내야 한다.
통일을 하되, 대한민국은 절대로 북한을 따라 공산주의로 통일하면 안 된다. 오직 민주주의로 통일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예수 믿을 복음의 자유가 있는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수많은 민주주의의 시험을 거쳐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유민주주의 선거제도를 정착하고 평화적인 정권 이양까지 이루어 낸 훌륭한 나라다. 폭발적인 경제 성장으로 반세기 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가 현재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자리까지 이른 저력 있는 나라다. 성공의 밑바탕에는 성도들의 기도가 있었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는 자동차를 제조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이고, 스마트폰, LCD, 반도체, 조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대한민국 기업들이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국제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인물들이 활약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이희돈 세계무역센터협회 부총재,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비롯해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많다.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고, G20 정상회의 의장국을 역임하며, 한 해 동안 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명의 발전 뒤에는 이혼, 자살, 성적인 타락, 퇴폐 향락 문화, 왕따, 입시지옥, 노인 문제 같은 윤리 도덕이 무너진 시대의 아픔이 상존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육신의 쾌락, 물질 만능주의의 폐해를 낳고 있다.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에 빠져 서로 싸우기에 바빠 민생을 외면한다. 최근에는 창조질서를 무시하는 동성애를 지지하려고 차별금지법을 발의해 통과시키려 한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과연 하나님이 지키실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가 생각해 본다.
이 땅에 경술국치 같은 치욕스러운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빼앗겨서는 안 되므로 대한민국 안팎으로 강성해야 한다.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윤리 도덕을 새롭게 하고 올바른 정치가들이 나와 부패를 청산하고 국민을 위해 정치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 정권의 압제에서 고통당하는 북한 동포들을 살려야 한다. 수많은 북한 동포가 굶어 죽어 가는데도 김일성 김정일 시체를 보관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는 저들을 징계해야 한다. 무모한 군사도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1945년은 우리 민족이 그토록 기다리던 해방의 해였지만, 북한 동포들에게는 오히려 김일성 일가에 나라와 자유를 빼앗긴 해가 되었다. 행복이 가장 큰 불행으로 변해 버렸다. 아직도 북한 동포들에게는 경술국치와 같은 아픔이 남아있다. 어서 빨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는가 싶었는데 오히려 일인독재 주체사상으로 정신이 피폐해지고 육체도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북한 동포들에게는 더욱 참기 어려운 70년 세월이었다. 통일의 날은 반드시 와야 한다. 우리의 잘못을 통회자복 하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자. 통일을 위해 힘을 쏟자.
오태영 안수집사
(교회복지국장)
위 글은 교회신문 <44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