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9-15 14:31:48 ]
지난 9월 2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의 가장 큰 외교적 성과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서울 개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해 10월에도 ASEAN+3 회의에서 3국 정상회의의 개최를 공식 제의한 바 있으며 이번에 결실을 맺었다. 개최 시기는 현재로서는 10월 31일과 11월 1일이 유력하다.
한국으로서는 10월 10일 북한의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핵이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이 예상되는 가운데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한편 한일관계 개선 등 외교적 현안들에 대처할 수 있는 국제 공조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외교적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 아베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 태도에 3국 정상회의를 거부해 온 중국 시진핑 주석을 박 대통령이 설득해 3국 정상회의를 도출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중국과 두 차례 정상회담으로 중일관계 개선을 통해 한국을 고립시키려는 아베의 외교 전략을 뿌리치고 동북아 외교전에서 일단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또 3국 정상회의 개최 합의는 이달 말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과 다음 달 16일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 11월 APEC 등 국제적인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한국의 입지를 밝게 해 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장밋빛 전망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문제들이 잠재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이달 말 아베 총리가 강행 처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안보법안이 3국 정상회의에 미칠 여파가 우려된다. 안보법안 처리와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은 3국 협력에 난기류를 형성할 것이다. 3국 정상이 이를 어떻게 다룰지도 관심사다.
3국 정상회의는 199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비공식 모임으로 시작된 이후 줄곧 한국이 주도해 온 측면이 강하다. 한국은 2007년 11월 3국 정상회의에서 사이버 사무국 설치를 이끌어 냈고 2011년 9월 3국 협력 사무국(TCS)도 한국의 주도로 서울에 문을 열었다.
이번 3국 정상회의 개최 합의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북한을 관리하고 통일을 이뤄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3국 협력이 누구보다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북한 문제가 3국 정상회의의 주 의제 가운데 하나다.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직후인 200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정상회의 때부터 북한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중국 원자바오 총리를 통해 3국 정상회의에서 세 번이나 정상회담을 타진한 바 있다. 어렵겠지만 북한을 3국 협력에 참여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핵심에는 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협력 사무국 통계를 보면 2012년 기준으로 한·중·일 세 나라의 인구는 15억 2천만 명으로 세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는다. 국가 총생산량(GDP)도 20%를 넘고 무역 규모는 세계무역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인접한 세 나라를 합한 규모는 지구상에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한중일의 협력 잠재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구상이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한중일의 협력에는 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버티고 있다. 영토문제와 역사문제, 3국의 배타적 민족주의, 중일 간 동북아 패권경쟁이 그것이다. 영토문제는 부존자원의 경제적 효과에 국가적, 민족적 자존심까지 걸려 있어 정치나 외교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역사문제는 영토문제와 더불어 한중일 협력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이다.
현재는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반발하고 있지만 동북공정 등 한중 간 역사문제도 잠복해 있다. 또 부상하는 중국과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일본, 10대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한국은 각자 내부적으로 민족주의적 감정을 적극 조장하거나 용인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중국과 일본의 패권경쟁은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 달 3년여 만에 열릴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엄청난 잠재력과 위기를 동시에 안고 있는 동북아 3국의 미래 전망을 밝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북한 통일 문제도 훨씬 현실성 있게 다가오게 할 서막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45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