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4-07 16:56:59 ]
세금과 헌금 아끼는 것이 시민과 신앙인의 도리
하나님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실천 노력 필요해
‘공유지의 비극’은 미국의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해 유명해진 이론이다. 목초지 같은 것을 공유하면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공유지가 망가지는 현상을 말한다.
‘공유지의 비극’은 논술고사에 단골로 출제되는 지문이기도 한데, 개인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공유지에 양을 많이 방목하려다 과잉경쟁을 불러와 목초지를 황폐화하고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는 상황을 보여 준다.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정부나 공동체가 법이나 제도를 마련해 각자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해 주고 공유지를 약탈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유지를 이용하는 구성원이 공유지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이기심을 억제하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을 때 나온다. 다시 말해 제도보다는 공동체의 것을 내 소유 이상으로 아낄 때 장기적으로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새삼스럽게 공유지의 비극을 언급한 것은 학교나 교회처럼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모두의 처분에 맡긴 자원이나 소비재를 무분별하게 낭비하는 일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각 건물에는 교수와 강사들이 강의 전후에 머물 수 있는 ‘교강사실’이 있다. 행정실은 교강사들이 마시라고 커피나 차를 갖춰 놓지만, 점심시간만 지나면 바닥이 난다. 음료수야 어느 정도 개인 소비의 한계가 있지만, 예컨대 건물 화장실의 휴지나 수돗물 등은 필요 이상으로 낭비되기 일쑤다. 강의실 전깃불이나 에어컨도 사용 후에 그대로 켜 두고 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주의 깊게 살펴서 끄거나 일부러 살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필자는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 사람이 없나 살펴서 화장실 전원을 끄고 귀가한다. 전체 건물을 다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바로 위아래 층을 살피고 점검하고 귀가한다. 이것은 필자가 자린고비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학의 녹을 받는 교수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전기나 수돗물 같은 공유재는 결국 학생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것인데, 이것을 낭비하면 학생들이 부담할 등록금이 늘어나고 결국 대학의 구성원 전체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절약은 필자가 실천하는 작은 직업윤리 중 하나다.
교회에서도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면 티슈를 딱 한 장만 쓰거나 필자의 손수건을 사용하려고 일부러 노력한다. 그런데 필자처럼 공유재나 성물을 의식적으로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생각만큼 널리 퍼져 있지는 않다. 오히려 직책이나 역할과 무관하게 큰 고민 없이 물이나 전기, 휴지 등을 거리낌 없이 낭비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공유재를 함부로 낭비하고 공짜처럼 생각한다면 결국 부메랑처럼 사회 전체의 손해로 돌아온다. 교회 물건들은 성물이기에 경제적 손해를 넘어 죄가 될 수도 있다.
레위기를 읽어 보면 성물을 함부로 했을 때 제사장이 속건제의 숫양으로 속죄를 해 주어야 죄 사함을 받는다고 경고한다(레5:16). 공유지와 공유재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지켜야 할 공공의 것이듯 교회 시설과 물건은 하나님께 드린 성물로 마련한 것이다. 불필요한 낭비로 교회의 재정을 새게 한다면 하나님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교회의 성물과 재산을 소중히 하고 지키려면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노력을 습관화해야 한다. ‘버려진 휴지와 낭비되는 물은 당신의 양심입니다’ 같은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훼손되고 낭비되는 성물은 당신의 영혼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공유재와 성물을 아끼는 마음은 민주시민의 자질과 신앙인의 성숙도를 보여 주는 징표일 수 있다.
김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현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4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