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7-10 14:48:18 ]
갈수록 꼬이는 동북아 정세 앞에
국제관계 냉엄한 현실 고려해 외교·안보 정책 펼쳐야
북한이 지난 4일(화) ‘화성-14형’을 발사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라고 주장했다. 발사 직후 일본은 미사일이 올라간 정점고도와 날아간 거리를 정확하게 탐지해 발표했다. 미 국방부도 ‘화성-14형’ 연료주입 때부터 탄두가 대기권에 재돌입하는 것까지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2단 액체연료 엔진을 장착한 ‘화성-14형’이 단 분리와 대기권 재돌입에 성공했음을 미·일이 공식확인한 것이다. 북한은 정말로 미 본토 타격능력을 갖게 됐고 북핵 진실의 순간은 기어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오고야 말았다.
동북아 안보지형은 일순간에 뒤집어졌다. 미국은 그동안 북핵 문제를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맹국 보호 차원에서 다뤘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본토 방어 차원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1945년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1991년 9·11 사태라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미국이 느끼는 북한 핵미사일의 본토 위협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북한의 ICBM 위협은 1962년 10월, 미 본토가 소련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됐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연상케 한다. 당시 미국에게 안보 위협을 느낀 공산국가 쿠바는 1962년 7월 소련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방어용 미사일을 공급해 줄 것을 요청했고 흐루쇼프는 대담하게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를 결정했다.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면 미국에 비해 열세였던 핵전력을 일거에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하지만 소련은 은밀하게 핵미사일을 배치하다가 미국에 발각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10월 22일 텔레비전으로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다고 공포하고 쿠바에 해상봉쇄조치를 내렸다. 미국 군함들이 쿠바로 가는 소련 화물선들을 강제로 검색했다. 소련 화물선들 뒤로는 소련의 핵잠수함이 호위하고 있었다. 흐루쇼프는 쿠바에 있는 야전군 사령관에게 미군이 공격하면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쿠바의 소련군은 쿠바 상공을 정찰하던 미 공군 U-2정찰기를 격추시켰고 냉전은 금방이라도 열 핵전쟁으로 바뀔 수 있는 순간이 이어졌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미국은 그동안 북한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이란에 비하면 대북한 제재는 파괴력이 없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북한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나, 이후 부시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북핵 문제를 보여주기식으로 다루었고 영변 냉각탑 폭파 등은 미봉책으로 다음 대통령에게 떠넘기곤 했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였다. 북한의 핵 위협이 본토에 미치지 못하는 데다, 중동 이라크의 경우 석유라는 막대한 전리품이 있었지만 북한을 제재해서 얻을 것이 없었다. 또 중국과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고 북한을 지원하고 있어 실익은 없고 위험이 너무 컸다.
북한은 이제 미국에게 제2의 쿠바다. 본토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된 상황에서 실익을 따질 때가 아니다. 하지만 북한 핵미사일은 쿠바의 핵미사일보다 훨씬 위험하고 복잡하다. 쿠바는 소련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카리브해에 덩그러니 있지만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군사력도 훨씬 강하고 ICBM까지 보유하게 됐다. 섣불리 공격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조치는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헤일리 주 유엔대사는 안보리 상임위 회의에서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중국·러시아와 대립하는 일도 불사하고 있다. 김정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 분명하다. ‘화성-14형’ 발사 성공으로 미국을 손아귀에 넣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과 중·러의 대결구도를 이끌어 냈고 G20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시진핑이 북한을 다시 혈맹이라고 말하는 상황까지 이끌어 냈다. 미·중의 대북 제재 공조는 균열이 났다.
여기에 대한민국은 소외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확고한 한미동맹을 확인했지만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우리가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갖게 됐다고 하지만 합의사항에는 조건들이 붙어 있다. 합의별로 미국과 생각이 다르면 이행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날, 미 CIA는 한국임무센터(KMC)라는 대북한 기구를 만들었고, 주한미군 역시 독자적인 대북 휴민트(HUMINT) 부대, 즉 인적정보 수집 부대를 만들었다. 겉으로는 동맹을 말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미 트럼프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협력을 하나둘 끊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 번복이 아니라지만 환경영향평가 같은 절차적 문제를 들어 배치 시기를 늦추면서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고, 사드 배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는 중국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북한은 인도적인 민간 교류 제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무주 세계태권도 대회 참석차 방문했던 북한 장웅 IOC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단일팀 제의를 “천진난만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남한에 대해 핵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협박하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하면서 미국과 북한은 정면충돌 위기로 치닫고 있다.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에게 협박당하고 북한에게마저 따돌림당하는 한국 외교는 더 늦기 전에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때를 맞았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53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