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갑질이 만연한 사회 - 한국사회 갑질 세태, 시급히 근절해야

등록날짜 [ 2017-08-07 15:29:37 ]

갑질은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도구로 대해 인간 소외 현상을 낳는 심각한 죄악
돈·직업·권력이 주는 특권의식 버리고
섬김받기보다 예수님처럼 섬기려는 태도 우리 사회에 넘쳐 나기를

대한민국 육군 사령관 부부가 사령관 공관에서 근무하는 현역 병사를 노예처럼 부리며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괴롭힌 게 폭로되어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사령관의 부인은 현역으로 공관(公館)에 배치된 병사에게 집안 빨래와 청소는 물론, 아들의 야식을 준비하게 하고 종처럼 부렸다. 또 요리병이 마음에 안 든다고 칼로 위협하거나 폭언을 하고 공관병에게 호출 벨을 채우고 비상 대기하게 해 온갖 잡무를 시켰다고 한다. 국방부가 조사에 착수했으니 진상이 드러나겠지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담당하는 젊은이를 개인 몸종처럼 부리고 학대한 것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을 과하게 부려먹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갑질 세태’는 군대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모 대기업 총수는 툭하면 운전기사에게 상욕을 내뱉고 외모를 비하하거나 부모까지 거론하며 폭언을 해 운전기사가 녹음해 고발하기도 했다. 대기업이나 가맹점 본사가 하청업체나 가맹점에 부당하게 손실을 전가하거나 단가를 후려치는 등 기업의 갑질도 많다. 특권층뿐 아니라 일반인도 ‘갑질’의 주인공이 된다. 마트나 식당 같은 서비스 업체 종업원에게 반말이나 희롱하는 표현을 쓰고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릎을 꿇리고 빌라고 요구한 일도 있었다. 대학에서도 교수들이 논문지도를 핑계로 대학원생에게 과도하게 사적인 일을 시키거나 급여를 빼돌리고 심지어 성추행하기도 해 물의를 빚었다. 갑질이 너무 일반화해 이제 어지간한 사례는 충격을 주지도 않는다.

갑과 을은 민법에서 계약 체결의 쌍방을 일컫는 말이다. 거래 관계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갑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계약에 명시된 한도를 넘어 무리하게 공정하지 못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갑질’이라 부른다. 갑질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보니 이 단어도 ‘재벌’이나 ‘김치’처럼 한국어 그대로 영어사전에 등재돼 나라 망신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왜 유독 우리 사회에 갑질 논란이 많을까?

학자들이 많이 지적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 초고속 압축 성장하고 물질적 성장만 중요하게 여겨 사회윤리나 평등의식 같은 인간적 가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탓이다. 원래 자본주의의 가장 큰 병폐는 인격적 관계가 물건과 물건의 관계로 변질해 인간소외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그런데 한국은 여기에 전통적인 가부장문화, 특유의 경쟁구도와 서열 세태가 결합하면서 갑질이 더 심하게 횡횡한다고 할 수 있다. 갑질은 우리 사회처럼 돈과 권력을 숭상하는 승자독식(勝者獨食) 세태에서 그릇된 특권의식처럼 작용하며, 갑질을 당한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이를 되풀이해 스트레스를 전가하는 고질적 병폐를 낳는다.

갑질은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한갓 도구처럼 대하는 그릇된 사고방식과 물질만능주의가 만드는 아주 잘못된 죄악이다. 직업과 지위는 일종의 역할이지 서열이 아닌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직업의 귀천을 나누고 허드렛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깔보는 경향이 있다. 좋은 차나 명품을 선호하는 현상을 뒤집어 보면 가난하거나 직업이 보잘것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개인을 직업, 돈, 권력에 따라 나누는 사고방식이 고쳐지지 않으면 사회적 결속이 무너지고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적대적 공동체가 된다.

성경은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잠22:22)고 경계한다. 또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다(막10:45). 우리 사회의 갑질 세태, 시급히 근절해야 한다.


/김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53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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