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10-24 16:22:44 ]
인간이 자유로이 사고하는 것 같지만
경험으로 체화된 ‘도식’의 영향을 크게 받아
거대한 장벽 앞에서도 ‘긍정의 도식’ 가진 사람은
믿음으로 어떠한 위기도 거뜬히 헤쳐 나갈 수 있어
인간이 동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보면 인간은 호랑이나 치타 같은 맹수에 비해 약하고 힘도 없지만, 생각하는 능력 덕분에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성경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라고 기록했는데 하나님이 준 선물이 ‘생각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능력’이다. ‘생각하는 인간’은 불을 이용해 문명을 일으키고, 언어를 사용해 사회와 공동체를 만들면서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렸다. 생각한다는 것은 지식을 통해 세계를 다루고 변형시키고 자신의 운명도 고민하는 특별하고 신성한 능력이다. 동물이 아무리 영리해도 생각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자유롭게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심리학 연구는 인간이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무의식적으로 사고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모 방송국에서 심리 실험을 했다. 피실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동일한 사람을 면접하게 했다. A그룹은 차가운 커피를 손에 들고 면접을 하고, B그룹은 뜨거운 커피를 들고 면접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A그룹은 면접대상자에게 주로 부정적 판단을 내린 반면, B그룹은 동일한 면접대상자에게 주로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찬 커피와 뜨거운 커피가 동일한 사람에 대한 판단을 서로 반대로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렇게 몸이 느끼는 자극이 생각을 결정하는 것을 ‘체화된 인지이론’이라고 한다. 또 인간은 사고하고 정보를 판단할 때 특정한 틀을 가지고 분석하는데 이것을 ‘도식(schema)’이라고 한다. 인지심리학은 도식이 삶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긍정적 도식을 가진 사람은 주어진 정보를 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지만, 부정적 도식을 가진 사람은 매사 부정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인지심리학은 인간이 객관적으로 사태를 보기보다 도식에 따라 인식한다고 주장한다.
도식이라는 것은 인간이 어렸을 적부터 성장하면서 경험한 사건이나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특정 도식이 형성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사고와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도식은 어떤 일을 판단하고 결정할 때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민수기를 보면 유명한 열두 정탐꾼 이야기가 나온다. 가나안 땅을 똑같이 정찰하고 돌아왔지만, 정탐꾼 열 명은 가나안 백성이 강하고 성읍이 견고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부정적 보고를 했다. 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선물이며, 그 족속이 이스라엘의 밥이라고 자신 있게 청중을 설득한다. 이 사건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긍정적 도식을 가진 사람과 부정적 도식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 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우리는 시련이나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가나안 땅처럼 거대한 장벽에 부딪힐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참믿음이 있다면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위기에서도 벗어나게 된다는 자신감을 잃지 않을 것이다. 반면 부정적 도식을 가진 사람은 매사에 불만이 생기고, 불안감이 커져서 일을 해보기도 전에 주저앉는다. 이런 도식에 갇히면 문자 그대로 자기 생각의 포로가 되어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한다. 세상에는 긍정 도식을 가진 야곱이나 요셉 같은 낙관적 인간, 부정 도식을 가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같은 비관적 인간 등 두 부류가 있다. 성경은 늘 감사와 소망을 당부하며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고 경계한다. 자신을 생각의 감옥에 가두지 마라.
/김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54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