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평창 아닌 ‘평양 올림픽’ 신세 주의해야

등록날짜 [ 2018-01-16 16:00:18 ]

공개회담 요청한 북한,
핵무장 타당성과 체제 선전 위해 평창 올림픽 활용할 가능성 커


지난 9일 2년여 만에 만난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자칫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북한 측 리선권 수석대표가 갑자기 회담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모두(冒頭) 발언 시간에 리 대표가 “우리 측에서는 공개해서 (회담) 실황이 온 민족에 전달되면 어떻나 하는 그런 견해다. 기자 선생들도 관심이 많아서 오신 거 같은데 확 드러내놓고 그렇게 하는 게 어떻나?”라며 돌발적으로 공개회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 측 조명균 수석대표가 “모처럼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은데 일단 통상 관례대로 회담을 비공개로 진행을 하고 필요하다면 중간에 기자들과 함께 공개회의 하는 것이 순조롭게 회담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며 완곡히 거절했다. 그러자 북한 측은 “우리 회담을 투명성 있게 북과 남이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하는가를 보여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투명성과 진정성까지 내세우고 적극적으로 나왔다.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이 투명성과 진정성을 이야기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북한의 회담 공개 요구와 투명성 제기가 뭐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의 요구는 그동안 남북대화 관례를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이면에 불순한 의도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은 공개를, 북한은 비공개를 요구하는 것이 수십 년 동안 회담의 관례로 자리 잡았다. 회담 전문가들은 북한이 모두 발언이 끝나고 본격 회담에 들어가면 남한 측에 경제적 지원을 간청하는 경우가 많아 거의 예외 없이 비공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비공개를 요구해왔다고 회담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왜 북한이 회담 공개를 요구하고 나왔을까?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회담 자체를 선전장으로 활용하려 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평창 올림픽 참가가 회담 전부터 이미 기정사실로 된 상황에서 북한 측으로서는 아쉬울 게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 대북제재가 과거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북한의 목줄까지 옥죄어 오고 고립이 심화하면서 회담장에서 제재의 부당성과 핵무기 개발의 정당성을 선전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회담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상황에서 북한 측 리선권 대표가 이런 발언을 거침없이 했더라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조명균 수석대표의 현명한 대처가 아니었더라면 고스란히 북한 측 대표의 체제선전 발언을 듣고 있을 뻔했다. 이런 장면은 남한 내 여론 갈등을 부추기고 대북제재 공조체제에 틈을 벌릴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북한은 이것을 노렸다.

또 북한이 이번 평창 올림픽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공동보도문에 드러난 북한의 요구사항에 나타나 있다. 공동보도문에 보면 북한 측은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에 고위급대표단과 함께 민족올림픽위원회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을 파견하기로 하고, 남한 측은 필요한 편의를 보장하기로 하였다고 돼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 측에서 파견할 인원이 400명~500명 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선수단보다 대표단이 훨씬 많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크게 우려되는 점은 북한 선전전이다.

지난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김정일 사진이 들어간 플래카드가 비에 젖는 모습을 보고 울부짖던 북한 여자 응원단의 악몽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들을 미녀응원단이라며 추켜세웠다. 이번에는 북한 모란봉 악단이 올지가 관심사가 돼 있다. 모란봉 악단은 김정은이 “새로운 100년을 열기 위한 문예혁명을 시작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려 만든 악단이다.

중국은 북·중관계 개선 차원에서 지난 2015년 12월 12일~14일까지 사흘간 모란봉 악단의 국가대극원 공연을 허가했었다. 하지만 모란봉 악단은 공연을 돌연 취소하고 귀국해버렸다. 당시 모란봉 악단은 리허설 도중 ‘단숨에’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배경화면에 핵무기 폭발장면과 미국령 괌을 넘어 날아가는 은하 3호 로켓 발사장면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혈맹이라는 중국 당국조차 김정은 찬양과 핵미사일 폭발장면이 공연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고 이 때문에 공연이 돌연 취소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 개인 숭배에만 몰입하는 모란봉 악단이 평창에 오면 무슨 노래를 부를까? 김정은 찬양과 핵미사일 발사와 폭발장면을 평창 올림픽 무대에서 연출하면 어떻게 될까?

북한은 극심한 고립과 제재 탈피를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평창 올림픽을 선전무대로 만들려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혹자의 지적대로 그렇게 되면 평창 올림픽은 평양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만은 막아야 한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이 모여 치르는 스포츠 제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북한의 선전전에 말려들지 않도록 세심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56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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