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6-07 12:08:47 ]
최근 뇌·인지·심리학 연구 결과
경험 많다고 지식 얻는 것 아냐
인간의 생각으로 보면 때로는
어리석은 것이 진리인 경우 많아
신앙인은 하나님이란 인지 도식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 인지 도식이 자리 잡을수록
더 지혜로운 인생 살 수 있어
‘견문(見聞)’이란 말의 뜻은 ‘보거나 듣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이다. 그런데 무조건 견문을 넓히면 지식이 커지고 지적으로 성장할까? 근대 어느 철학자는 인간의 지식과 관념은 오직 경험에서 비롯한다고 말하면서 ‘빈 서판(書板)’ 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나오는 뇌 과학, 인지 과학, 심리학 연구 성과는 이런 생각과 반대인 경우가 많다. 인간은 텅 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백지 상태에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언어를 배울 수 있고 감정과 행동을 모방하고 직관적으로 무언가를 알고 추론할 수 있는 선천적 능력이 인간에게만 있다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지능이 인간과 비슷하게 높은 침팬지에게 아무리 인간의 말을 가르쳐도 인간처럼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기껏 몇 가지 단어만 구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우리가 같은 경험을 해도 받아들이는 바가 다 다르고 수준 차이도 나는 것도 경험을 해석하고 그것에서 새로운 지식을 끌어내는 인지 도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무조건 경험을 많이 한다고 지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보는 것이 더 맞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고대 상형문자가 새겨진 유물은 고고학자에게는 많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그것을 통해 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원시 부족에게는 고대 유물이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같은 문화권 사람도 배움과 관심사에 따라 세상을 보는 범위가 다르다. 문화해설사와 동행해 낯선 곳에 방문해 그곳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한 번이라도 설명을 들어 보라. 그다음에는 평범한 그 장소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필자가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학생보다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학생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같은 책을 읽어도 전문 연구자의 이해와 학생의 그것은 폭과 깊이가 다르다. 이는 오랜 기간 학문 연구와 훈련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짧은 지식 습득으로는 불가능하다.
현대사회는 정보사회라 누구나 약간의 웹서핑만 하면 여러 자료나 학술 데이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다못해 네이버 같은 포털에서 정보를 검색해도 수많은 정보를 힘들이지 않고 모을 수 있다. 옛날에는 학자들이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일반인보다 우월한 위치에 섰다면,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 독점이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문가가 권위를 갖고 일반인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정보를 분류하고 해석하고 새로운 지식을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신앙 세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신앙인은 하나님이라는 인지 도식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사람이다. 이 도식은 세상의 지식이나 진리와는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인간의 생각으로 보면 어리석은 것이 진리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아주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섭리를 안다면 절망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다. 지나고 보면 화(禍)가 변해 복(福)이 되거나, 어리석어 보였던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능력 있는 주의 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감동하는 것도 새로운 지식을 얻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던 것을 신앙의 눈으로 전혀 새롭게 보는 도식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지 도식이 자리 잡을수록 더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석 집사
現 건국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578호> 기사입니다.